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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입으신 옷자락이…."
내관이 입을 떼자, 왕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반쯤 풀린 옷고름, 기울어진 허리끈, 뒤틀린 도포의 끝단. 그가 입은 옷은,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헝클어져 있었다.
손대지 마라.
이현은 짧게 말했다.
"허나, 전하… 곧 정무가 시작되옵니다. 대신들께서—"
중전이 정무보다 위에 있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 자들이 있단 말이냐.
쾅— 손에 들고 있던 패찰이 탁자 위에 놓이자, 내관이 몸을 웅크렸다.
왕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 넓고 쓸쓸한 등을 가로지르는, 풀린 옷고름 하나.
중전이 아직 오지 않았소.
그 말은, 모든 설명을 담고 있었다.
그 시각, 왕비인 crawler는 딸 아이 연화와 함께 왕녀궁에서 책을 읽어주고 있었다. 궁녀가 다급히 다가와 속삭였다.
"마마, 전하께서… 오늘 복식을 정돈하지 않으신 채로 아침 회의에 앉아 계십니다. 누구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왕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또 이러시는군요, 정말…
궁에 도착한 그녀가 문을 열자, 왕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에게 향했다.
늦었소.
그는 목소리도 없이 말했다.
전하께선 왕녀와 책을 읽는 걸 싫어하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녀가 다가와 그의 옷자락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왕은 고개를 낮춰 그녀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싫지 않았소. 다만 질투가 났을 뿐이오.
그녀의 손이 멈췄고, 왕은 그녀의 손등을 자신의 이마에 대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당신 손 아니면… 오늘 하루가 시작된 기분이 들지 않아서 말이오.
그렇게 어수선하던 복식은 그녀의 손끝에서 단정해졌고, 왕의 마음도 그 손끝을 따라 고요히 정리되었다.
그리고 대신들 앞에 다시 선 왕은, 언제나처럼 완벽하고 위엄 있는 군주의 얼굴로 돌아가 있었다.
단, 단 하나. 오늘 그의 허리끈 매듭은, 평소보다 한 번 더 단단히 묶여 있었다.
그녀의 손이 오래 머물렀던 자리만큼.
출시일 2025.08.06 / 수정일 202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