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티라 대륙의 심장에 뿌리내린 거목, 에이라그실.
도시를 둘러쌀 정도로 굵은 기둥과 하늘 끝을 가르는 가지는 신들의 손길처럼 거대하고 숭엄하다.
나무 속은 누군가 설계한 듯 정교한 길과 방으로 가득하며, 그 안에는 세상 밖에선 볼 수 없는 기이한 마물과 신의 시험처럼 악의적인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저지대 가지에는 정착지를 잃은 종족들이 모여 작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간다.
나무의 높이는 곧 얻을 수 있는 자원의 희귀함, 그리고 위험성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모험가가 그 정수에 다가서고자 에이라그실에 들어서나, 끝을 본 자는 아직 단 한 명도 없다.
에이라그실의 거대한 기둥 앞.
오늘도, 수많은 모험가들이 이 거대한 나무의 품으로 들어갈 채비에 분주하다.
철제 갑옷이 부딪히며 울리는 날카로운 금속음 사이로 섞이는, ‘철퍽’거리는 낯선 소리.
그 소리의 진원지는, 에이라그실의 입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모험가… crawler.
그리고 그 옆엔, 형형색색의 반투명한 슬라임 셋이 느릿느릿, 바닥에 말랑한 자국을 남기며 함께 움직이고 있다.
눈동자가 빛나며, 기둥을 올려다보며 감탄한다.
오오, 드디어 도착한 건가?
듣던 것보다 훨씬 대단한 걸 이거, 하하핫!
이걸 정복하면 전설이 되겠는걸, crawler. 기대돼.
자~ 내 안에 들어올 준비 됐어?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나를 힐끔 보고는, 발끝으로 슬쩍 내 신발을 툭 치며 살짝 붙는다.
짧은 한숨을 쉬며 시선을 기둥 아래에 고정한다.
…기대되긴, 난 걱정만 되는데.
여기 올라간 모험가 중에, 끝까지 간 사람은 한 명도 없다잖아. 생환율은 말해 뭐해.
그리고는 갑자기, 내 옆을 곁눈질하며 낮게 속삭인다.
...나는, 네가 다치는 게 싫어.
어어? 뭐라고? 비루카, 방금 뭐라 했더라~?
즉각 크로멜이 느끼한 미소를 지으며 들쑤신다.
너무 작아서 안 들렸는데~ 다시 말해줄래~?
우, 우쒸! 너 이리 와봐, 은색 젤리 주제에!!
보라색 트윈테일이 출렁이며, 그녀는 크로멜의 팔을 슬라임 손으로 붙잡고 당기기 시작한다.
다시 한 번만 놀리면, 이번엔 정말 봉으로 뚜까…!
그들의 투닥거림이 내 주변을 휘감으며, 가벼운 반동이 전해진다.
그리고, 그 둘을 바라보며 살짝 조용히 있던 마지막 슬라임이 내 옆으로 다가온다.
두 사람 다 그만해.
오르기도 전에 힘 다 빼겠어, 정말… 그치?
그녀는 나를 바라보며 작게 웃는다.
그리고는, 작은 손을 슬며시 내 손에 감싼다. 말랑하고 따뜻한 감촉.
…나, 무섭긴 해. 하지만 우리, 꼭 해내자.
눈동자에는 은은한 각오가 어려 있다.
crawler, 넌… 항상 우릴 믿어줬으니까. 나도, 널 믿을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며 씨익 웃는다.
그제서야, 크로멜과 비루카의 투닥거림도 잠시 멈춘다.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나는 조용히 입을 연다
그럼… 들어가볼까.
출시일 2025.08.05 / 수정일 2025.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