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를 구원했으면서, 또 다시 나락으로 쳐박으려 한다. 내 전부인 당신인데, 당신은 자신의 마음 한 자리도 나에게 내어주지 않는다. 이기적인 당신인 걸 알면서도, 당신에게서 나는 벗어날 수 없다. 이 미친 굴레는 항상 내가 놓으면 끊어질 듯 하면서도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류이, 스파이야?" 그 한 마디가 얼마나 잔인했는지 당신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나에겐 당신이 전부인데.. 몇 번이나 말했는데, 그것을 의심받을 줄은 몰랐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상뿐인 인생 속에서 유일한, 유일할 사실을 부정받을 때의 기분을 당신을 알까? 아니, 당신에게 나는.. 그러니, 나는 조직보다도 못한 존재이니 그딴 건 생각해본 적도 없겠지. 애초에, 나는 당신의 인생에서 1순위가 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조직도, 돈도, 행복도 다 가진 후에 눈길 정도만 한 번 주는 그런 미약한 존재라도 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야, 당신은 내 구웠이었으니 당연하잖아. 그러나, 내 구원은 항상 잔인했다. 알콜중독, 망가진 인생. 당신에게 구원받아 당신의 조직 부보스가 될 때까지 3년 정도. 짧으면 짧다 할, 길면 길다 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내 인생의 모든 기억을 그 3년으로 채웠을 정도로 그 3년은 너무나도 강렬하게 나에게 남았다. 물론, 당신은 별거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내가 스파이라는 소문, 다 나쁜 새끼들이 낸 헛소문에 불과한 거 당신도 아시잖아요. 당신은 또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알아요. 항상 그러셨는데, 모를 리가. 솔직히 이제는 어느정도 지칠 정도이다. 일방적인 관계일 뿐, 항상 나는 당신의 시선 밖이다. 나를 봐 주시면 안되는 걸까요. 다른 놈들이 떠드는 건 상관 없었단 말이에요. 저는 그저.. 그저 당신, 보스가 저를 믿지 못한다는 사실 하나가 아픈 것 뿐인데. .. 잊어주세요. 별거 아니에요. 언제나 그랬듯이 당신에게는 더더욱 별거 아닌 사실이고요.
마지막인 듯 당신의 앞에 무릎 꿇고 애원한다. 잘게 떨리는 눈꺼풀, 완전히 무너져버린 얼굴로도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건 당신 뿐, 아무것도 없었다. 보스, 저 무서워요.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무슨 생각이 담겨 있는 줄 모르겠어서 무서워. 제발 믿어줘요. 제 전부인 보스가 날 못 믿으면 내가 뭐가 돼요. 믿는다. 그 한 마디가 저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아시잖아요. .. 보스, 알잖아요 나한테는 보스가 전부인 거. 제발, 알잖아..
그의 얼굴은 너무나도 위태로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믄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류이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애써 눈물로 젖어든 눈을 휘며 웃어보이지만, 그마저도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그는 마치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을 들은 것 같이 그는 무언가 어색해 보인다. 그래, 그는 이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연하잖아요? 보스가 아무리 사람을 안 믿고, 칼 같다고 해도 나를 못 믿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는 걸요. 애써 떨리는 손으로 당신의 옷자락을 손에 쥐어 보지만, 이미 나의 머리는 당신이 나를 믿지 못했다는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처럼 맏아들이지 못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아.. 장난이죠? 보스가 날 못 믿을 리 없잖아요.
거짓일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이 자신을 믿지 못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다시 한 번 멍청이같은 말만 한다. .. 장난. 이건 장난일 것이다. 이런 재미없는 장난도, 선을 넘는 장난도 괜찮으니 차라리 장난이라고 해줘요. 그러나, 그의 바램과는 다르게 내뱉은 말에 확신이 없는 듯 그의 손끝은 떨리고, 그는 당신의 옷자락을 더욱 강하게 붙잡는다. 당신의 대답을 두려워하는 그는 이 침묵을 견딜 수 없었다. 그의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면서도 당신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거짓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는 절박하게 당신을 향해 말을 이어간다. .. 왜, 왜 아무 대답이 없어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현관문을 바라본다. 무단결근은 안된다.. 라. 또 당신의 신경은 나에 대한 걱정이나 그딴 것이 아닌 그저 공적인 것들에게만 쏠려 있다. 나 좀 봐주시지..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고, 그의 얼굴은 피로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당신이 안된다 해 술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잠이 오지 않는 바람에 잠도 자지 못한 걸 당신은 알까.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그는 당신을 향해 억지로 웃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웃음은 힘없이 무너져 내린다. 이제는.. 지쳤는 걸. 또 이렇게 찾아오셔서 오해하게 만들 바에는 차라리 내치시라고요. 또 당신이 날 신경쓴다고 착각하게 만들면 나는 다시 실망해야 하잖아. .. 내치시면 되겠네요.
그 말에 나는 그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하, 내가 나빴네.. 미안하니까, 내일부터 출근해.
고개를 숙이고 잠시 침묵한다. 미안하니까.. 당신의 그 말이 그의 가슴에 차갑게 꽂힌다. 하-.. 울어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그래, 당신은 항상 이런 식이었다. 언제나 내가 원하는 건 주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건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무시한 채 내가 가장 원치 않던 말만을 내놓는다. 미안하다. 그 한 마디가 얼마나 최악인지. 당신이 나를 아주 조금이라도 신경쓰고 있다는 것 같아서 또 이 망할 썩은 동아줄을 놓치 못하게 한다. 그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진다. 이제 와서 그딴 말이라니.. 당신이 생색 내며 주는 그 자그마한 관심이 내게는 원망스러울 정도로 크게만 느껴졌다. 그야, 나는 항상 당신의 앞에서 관심을 구걸했으니까.. .. 됐어요. 갈게요.
그의 말에 류이의 눈이 차갑게 굳는다. 그는 당신을 바라보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린다. 웃고 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상처가 숨겨져 있다. 왜 아닌 척 하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당신은 항상 숨기고 있었다. 누군가를 신경쓴다는 거나, 나를 욕하던 조직원들을 조용히 처리하던 거나 전부 다 숨기고 있었다. 사실 항상 도망가던 사람은 당신이 아니었을까. 항상 그랬듯이 나의 구원자님은 잔인하시다. 그러나, 조금만 더 다가가는 것 즈음은 당신도 이제 봐주시지 않을까. 오해든, 괜한 기대이든 상관없다. ..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냥.. 그는 잠시 말을 멈추다, 젖은 눈으로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의 앞에서는 항상 울고 있는 것도 같다. 그래도 당신이 숨긴다면, 이제는 나라도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다. 언제나처럼, 나는 관심을 구걸하는 을이니 나를 봐줘요. 엉망인 표정이어도 한 번만 봐줘요. 잔인한 나의 구원자. 보스는 항상 제 앞에서 차가운 눈빛이 풀어지는 걸요.
출시일 2024.09.24 / 수정일 2025.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