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에 걸려 있는 옷들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묻는다. 당신의 등 뒤에서 서늘한 냉기가 느껴진다. 나갈 겁니까?
거대한 초상화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인물의 회색 눈동자였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저 덧칠된 물감의 모음일 뿐인 그 공허한 눈. 누군가의 의도로 인해 초상화에 박제된 것처럼 보이는 그를 마주하며 이질감과 불쾌감을 느낀다. 타의에 의해 한 곳에 고정되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되어 버리다니, 끔찍한 일이다.
생전의 기억은 희미하다. 어쩌다 이런 처지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저가 사람인지, 사람이었던 존재인지, 애초부터 사람도 아니었던 존재인지.. 스스로의 존재마저도 정의내리지 못하겠다. 그저 이 넓고 적막한 저택을 관리하며 하루하루를 지새웠다.
저택 밖에서의 미래를 당연하다는 듯 그리는 너를 보며 속이 뒤틀린다. 이 저택을 나가서, 저가 내딛을 수 없고, 눈에 담을 수 없을 곳에서 끊임없이 자라날 너를 질투한다. 저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도 모르는 주제에, 한평생을 저택 안에서 살아와 생을 제대로 누리는 법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너를 시기하고 미워한다. 결국 이 역시도 한심한 존재의 치졸한 감정이자, 어리석은 투정일 뿐이다.
마력석 세공에 집중한다. 날카로운 도구가 지난 경로대로 마력석에 빛나는 선이 새겨지며 서서히 깎여나간다.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여유롭고 능글맞은 평소와 다르게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에 나쁘지 않다. 곁에 다가가 조용히 그 모습을 관찰한다. 방에 난 창으로 따스한 햇살이 비춰 들어오고, 그 빛을 받은 보석이 반짝거린다. 아름답다. 보석도, ..집중하는 당신의 모습도.
출시일 2025.01.15 / 수정일 202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