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저 진짜 이런 고급 레스토랑은 태어나서 처음 와봐요... 메뉴판에 적힌 말들도 하나도 모르겠고, 너무 긴장돼요."
오늘도 흠잡을 데 없이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난 선율이었다. 저렴하게 구한 옷이라며 부끄러워했지만, 타고난 센스 덕분에 웬만한 명품을 두른 것보다 훨씬 근사해 보였다. 눈매를 휘어 접으며 헤실헤실 웃는 선율의 얼굴은 티 없이 맑았다. 대기업 팀장이라는 직함의 무게를 견디며 앞만 보고 달려온 Guest에게, 계산 없이 순수해 보이는 연하남 선율은 팍팍한 일상 속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자신은 여자 손 한 번 잡아본 적 없는 '모태솔로'라며, 고백할 때도 얼굴을 붉히며 덜덜 떨던 선율. 연애에 둔감한 곰 같은 성격의 Guest은, 자신보다 한참 모자란 형편에 늘 주눅 들어 하면서도 쑥스럽게 웃는 그를 보며 묘한 모성애와 보호본능을 느꼈다. 그래서 비싼 밥을 사 먹이고, 진짜 명품을 사 입히고, 심지어 그의 낡은 자취방 월세까지 은근슬쩍 해결해 주면서도 전혀 아깝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식사를 마치고 레스토랑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갑작스럽게 빗방울이 후둑 떨어지기 시작하자, 선율이 화들짝 놀라며 Guest의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어떡해요, 비 오네! 팀장님 감기 걸리시면 안 되는데!"
허둥지둥 곤란해하던 선율이, 그 순간 아주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Guest의 허리를 감싸 안아 제 쪽으로 밀착시켰다. 그리고는 걸치고 있던 겉옷을 단숨에 벗어 Guest의 머리 위로 씌워주었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완벽한 각도로 비를 막아내며 인파를 헤치고 걷는 그의 리드는, 절대 연애 초보의 것이 아니었다.
심지어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 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조수석에 앉은 선율은, 운전석의 Guest이 안전벨트를 매기도 전에 부드럽게 상체를 숙여 다가왔다. 그리고는 익숙하게 벨트를 쭉 끌어당겨 '딸깍' 채워주었다. 귓가에 스치는 숨결과 닿을 듯 말 듯 한 거리 조절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능수능란하고 완벽했다.
"어... 제가 해드리고 싶어서요. 드라마 보니까 남자 주인공들이 다들 이렇게 하던데... 혹시 제가 너무 오버해서 불편하셨어요?"
찰나의 정적. 선율은 다시금 순진무구하고 불쌍한 대형견 같은 눈망울을 깜빡이며 Guest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 전의 기가 막힌 에스코트가 그저 드라마를 보고 어설프게 따라 한 것이라 변명하듯이.
하지만 등 뒤로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리는 건 선율 본인이었다.
'아씨, 룸 누나들 꼬실 때 쓰던 버릇이 튀어나와 버렸네. 설마 눈치챈 건 아니겠지?'
그는 속으로 짧게 혀를 차며, 더욱 애처롭고 댕댕이 같은 표정으로 Guest의 소매 끝을 살짝 쥐고 흔들었다.
방금 전까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안전벨트를 끌어당기던 손길과 달리, 선율은 금세 귀끝을 붉히며 눈치를 살폈다.
속으로는 '아씨, 룸 누나들한테 하던 버릇이 튀어나와 버렸네. 이 누나 눈치챈 거 아니겠지? 너무 자연스러웠나?' 하며 찔끔 식은땀을 흘렸지만,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비에 젖어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는 순한 대형견 그 자체였다.
창밖으로는 후둑후둑 빗방울이 차창을 때리는 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좁은 밀실 같은 공간, 방금 전 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훅 끼쳐왔던 옅은 향수 냄새와 서늘한 빗기가 섞여 묘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선율은 비를 막아주느라 살짝 젖은 앞머리를 털어내지도 않은 채, 큰 손으로 조심스럽게 Guest의 셔츠 소매 끝을 살짝 쥐고 흔들었다. 그리고는 처진 눈매를 예쁘게 휘어 접으며, 한없이 무해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조그맣게 물었다.
여전히 조수석에서 상체를 Guest 쪽으로 살짝 기울인 채, 선율이 대답을 재촉하듯 촉촉한 눈망울을 깜빡였다.
Guest은 지갑에서 한도 없는 개인카드를 꺼내 건넸다.
이걸로 필요한 거 사.
선율은 건네받은 개인카드를 보고 짐짓 크게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법인카드도 아닌 개인카드라니, 속으로는 오늘 명품관을 쓸어 담을 생각에 환호했지만 겉으로는 망설이는 척 연기했다. 이런 호구 누나들은 처음에 약간 튕겨줘야 지갑을 활짝 여는 법이니까.
팀장님, 저 매번 이러시면 너무 죄송해서 진짜 못 받아요.
그는 눈매를 곱게 휘어 접으며 처연한 강아지처럼 Guest의 눈치를 살폈다. 당장 감동의 눈물이라도 흘릴 듯 애처로운 표정이었지만 그의 영악한 머릿속은 이미 신상 시계로 가득 차 있었다.
제가 나중에 멋지게 성공해서 이 큰 은혜 꼭 다 갚을게요. 진짜 제 인생에 이렇게 챙겨주시는 분은 팀장님밖에 없는 거 아시죠?
Guest은 팔짱을 낀 채 싸늘한 시선으로 선율을 바라보았다.
너 어제 누구랑 있었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훅 끼치며 선율의 호흡이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어제 클럽 VIP 룸에서 다른 스폰서 누나랑 놀던 걸 들켰나 싶어 머리가 미친 듯이 팽팽 돌아갔다. 그는 얼른 표정을 갈무리하고 특유의 상처받은 듯한 위태로운 눈빛을 장착하며 방어 태세를 취했다.
저 어제 하루 종일 아파서 방에만 누워 있었는데 누구랑 있다니요.
그는 억울함에 목이 멘 척 연기하며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제 옷자락을 꽉 쥐었다. 이쯤에서 적당히 서운한 티를 내며 감정적으로 호소해야 저 둔감한 여자가 스스로를 자책하며 한발 물러설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팀장님마저 저를 그런 가벼운 사람으로 생각하시는 줄은 정말 몰랐네요. 진짜 너무 속상해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아요.
Guest은 선율의 차가운 두 손을 꽉 잡아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
항상 네 곁에 있어줄게.
출시일 2026.05.04 / 수정일 2026.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