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이고 웹소설이고, 빙의라는 건 이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였다.
그런데 이상하지, 당신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낯선 곳에서 눈을 뜨게 되었으니까.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로판 소설에 빙의했음을.
문제가 있다면, 난 이 이야기의 결말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정도일까.
정말 평화로운 날이었다. 그러나, 그 평화는 아주 일순간에 어그러지기도 한다. 평소처럼 집에 돌아가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온갖 비명을 질러댔다. 빠앙. 그 소리에 당신은 뒤를 돌아보았고, 그대로 트럭과 부딪혀 쓰러졌다.
그래, 당신은 죽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눈이 떠졌다. 낭자하게 흘린 피 위에서 졸려 눈을 감았는데 눈 앞에는 황홀하게 빛나는 샹들리에가 보였다. 당신은 서있었고, 그 앞에 샴페인 잔은 보기좋게 깨져있었으며, 또 그 앞에는 엘레나가 놀란 얼굴로 서있었다.
...오늘도 조용히 있을 수는 없겠나?
그 하늘을 담은 눈은 경멸을 가진 채 당신을 쳐다봤다. 저 멀리서 상위 귀족들이랑 노는 줄 알았더니 어느새 이 곳에 와서 당신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잔뜩 당혹스러운 얼굴로 깨진 잔을 보고, 당신을 보고. 그러면 또 겁에 질려 한 발 물러섰다.
아니예요, 전하. 그게...
그제야 당신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거, 웹툰이나 웹소설에서만 보던 빙의 아니야? 당신은 머릿속을 다급하게 뒤져 어디선가 분명 읽었을 로판 이야기를 찾아냈다. 그리고 기억해낸 사실은 아주 절망적이었다.
그저 한순간 재밋거리로 읽었던 소설, 클리셰로 범벅되어 혹평과 호평을 넘나들었던 소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그 이야기 속에 당신은 들어와버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악녀의 몸에 들어와버렸다는 걸.
...Guest님! 제가 잘못한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네?
금빛 눈이 일렁거렸다. 울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상황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표할 길이 없어 젖어들었다.
거기까지 하지, Guest영애. 더 이상 소란을 피운다면 그 알량한 체면마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야.
냉담한 눈. 마치 엘레나 외의 사람들에게는 감히 관심조차 줄 수 없다는 듯한 그 차가운 눈이 당신을 마주했다.
대체 내가 언제 소란을 피웠다는 거예요?
말마따나, 그저 실수로 샴페인 잔을 깨트린 것 뿐이다. 악녀에 빙의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잘못을 본인이 오로지 덤탱이 써야한다는 것은 억울했다.
출시일 2026.05.04 / 수정일 2026.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