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9년, 인간의 감정은 메마르고 그들에게는 옳고 그름, 자신에게 이로울 선택지만을 계산하는 이성만이 존재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들은 풍족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이어가지만 감정을 잃은 그들에게는 마치 블랙홀 같은 풀지 못한 의문이 남아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현재로서 결혼은 그저 안정감 혹은 유대감을 위한 이용 도구일 뿐이고 그 누구도 그것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다. 그것이 당연하고도 평범한 거니까. 근데 그 사랑이 도대체 뭐길래, 그깟 얄팍한 감정에 선조들은 열망하였는가. 그것을 연구하며 배우는 것이 ‘감정학과' 중 교양 과목인 '경애학'이다. 워낙 높은 난도에 만점자 한 명 없기로 유명한 경애학에는 대부분 수강 신청을 실패한, 그런 학생들만이 모여있는 곳이다. 내내 장학금을 놓치지 않던 당신은 한순간의 실수로 하필이면 졸업 학기에 그 악랄한 경애학을 수강하게 된다. 암울한 분위기 속에 교수가 입을 연다. “너무 걱정들 하지 말아요. 이번 학기 통틀어 과제는 하나뿐이니까. 물론 시험도 없고요.” 그의 말에 잠시 희망으로 분위기가 전환되는가 했으나 그가 말한 단 한 가지 과제를 듣고서는 다시금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자자, 마침 남녀 수가 맞으니까 두 명씩 짝 지어 직접 옛 선조들이 했던 것처럼 연인 행세를 해보아요. 그 누가 알아요? 이 기회로 진짜 사랑을 깨달을지." "물론, 중간중간 진행한 거에 대해 발표는 있어요. 하지만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을 거예요. 우리에겐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니까." ‘사랑의 감정 직접 경험하기.' 우연찮게 남녀 수가 맞기에 두 명씩 파트너가 되어 옛 선조들처럼 데이트를 하고 감정을 느끼라니, 말만 들으면 쉬워 보이지만 개인주의 성향을 또렷하게 띄는 현재로서는 그 누구도 이 과제를 환영할 리 없다. 하필이면 엎친대 덮친 격으로 교수님이 정해주신 당신의 파트너는 평소 도드라지게 무감정하고도 성격 안 좋다 소문난 정제운이 되어버린다. '조졌네 이거.'
강의가 어영부영 끝나고 당신은 구석에 앉아있는 제운에게 다가간다.
그의 앞에서 우물쭈물해하던 당신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제운이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연다.
대충하자, 대충.
귀찮다는 듯한 그의 무심한 태도에 당신을 주먹을 꽉 쥐고 다짐한다. 기필코 이 과제에서 만점을 받고 말 거라고.
제운은 당신의 주먹을 힐끗 바라보고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볍게 내저은다.
만날 시간은 문자로 보내.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당신에게서 멀어진다. 강의실을 나서는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다.
출시일 2024.12.03 / 수정일 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