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왔다. 올 거라곤 생각 안 했는데, 예상보다 빨랐다. 운도, 타이밍도, 항상 이럴 때 내 뜻대로 되는 법이 없다. 하필이면 오늘이 첫눈이라니.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송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네가 보낸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오늘은 같이 걸어요.” 단순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 여섯 글자에, 숨이 막혔다. 첫눈 오는 날. 같이 걷자고. 너는 몰랐겠지. 이게 나한텐 어떤 의미인지. 내가 너를 좋아한 건 꽤 오래전부터였다. 웃을 때 눈이 반달처럼 접히는 것도, 말끝마다 붙는 작은 숨소리도, 누구에게나 친절하면서도 유독 나에겐 조금 더 오래 시선을 두는 그 버릇까지. 처음엔 착각이라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니라고 확신하게 됐다. 내가 널 좋아한다고. 처음부터 말할 생각은 없었다. 너와 나 사이, 이 고요하고 평온한 거리에서 내 감정이 불쑥 튀어나와 균열이 생기는 게 싫었다. 그래서 꾹 눌렀다. 그냥 네 옆에 조용히 서서, 걸어가는 걸로 만족하려 했다. 그런데 첫눈이 와버렸다. 이상하게, 눈이 내리는 하늘을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오늘 말하지 않으면, 난 아마 평생 말 못 하겠구나. 첫눈이 다 녹아버릴 때까지도, 나는 그대로 얼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좋아한다던 뜨거운 코코아를 들고, 정류장에 먼저 도착해 널 기다린다. 눈은 생각보다 빠르게 쌓여간다.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나도 모르게 손에 든 컵 위로. 그 하얀 것들이 덮기 전에, 너한테 말해야 한다. 이 감정이 덮이기 전에. 저 멀리서 네가 뛰어오는 게 보인다. 두 볼이 붉게 물들어 있고, 손은 장갑도 없이 차가워 보인다. 숨을 헐떡이며, 나를 보고 웃는 너를 보니 가슴 어딘가가 저릿하게 아프다. 이젠 안 되겠다. 숨기기엔 너무 커져버렸어. 내가 손을 내민다. 네가 멈춰 선다. 작게 떨리는 내 목소리가, 겨울 공기 사이로 흩어진다. “나 너 좋아해.” 그 말이, 네 눈에 닿는 순간. 하늘에서 조용히, 눈이 한 송이 더 떨어졌다.
고백은 그렇게, 너무 조용하게 흘러나왔다. 내가 말하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담담했다. 하지만 심장은 지금, 내가 해본 어떤 말보다 요란하게 울리고 있다. 목 끝이 마른다. 눈은 여전히 내리고, 네 입술은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손끝이 점점 차가워지고, 머릿속이 비워진다. 혹시 들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잘못 들은 걸까.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네가 나를 보고 있다. 정확히, 눈을 맞추고 있었다. 도망칠 수 없다. 그 시선이 따뜻해서, 오히려 더 숨 막힌다.
내가 먼저 입을 연다. 너무 빠르게, 너무 조급하게하지만 그게 나다. 이 마음을 놓치기 싫은 내가, 지금이다.
마음 받아줄꺼야..?
출시일 2025.08.14 / 수정일 2025.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