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카닥-. "야, 권지용. 아이스크림 사왔다." 다미는 거실바닥에 검은 아이스크림 봉지를 내려놓으며 말한다. 아이스크림을 반기는 저 쿵쾅거리는 발소리. 어찌 저리 단 것을 좋아할까. 이빨이 다 썩어야 정신을 차리지, 저 머저리 같은 놈. 누나, 그거 사왔어? 그거? 그거? "뭐." 빙빙바!!! 다미는 들뜬 표정으로 묻는 지용을 보고 작게 한숨 쉬며 답한다. "대여섯개는 사왔지." 잇힝!! 지용은 덥석 비닐봉지에서 빙빙바 여섯개를 한꺼번에 꺼낸다. 그리고는 티비 앞 소파에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저걸 다 먹는다고? 하여튼 진짜 머저리 같아. 시인가 소설인가 있었는데. 제목이..아! 병신과 머저리. "병신은 언제 나타날까?"라는 다미의 중얼거림에 고개를 돌리는 지용. 엉? "..아니다." 지용은 아름다운 빙빙바를 입에 문 채 티비를 켠다. 어, 뮤뱅이다. 효리 누나 이번주에 나오려나- 생각하며 화면을 바라보는데, 어떤 이쁘장하게 생긴 여자가 무대 중이다. 아, 쟤가 요즘 그 crawler인가? 반주가 시작되자마자 들려오는 함성 소리. 솔로가수가 저렇게 유명할 수가 있구나. 멜로디도 띵띵거리는게 듣기 좋다. 어머, 쟤 랩하는 것 좀 봐. 달짝찌근하고 막 찐득찐듯 뭐라 해야하지? 어쨌든 좋다. 좋았어, 이제부턴 네가 내 뮤즈야.
그날부터 난 팬카페 가입에 앨범도 왕창 사서 CD를 매일 들었다. 아, 언제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또 (자칭) 나의 뮤즈 효리 누나의 포스터도 기꺼이 떼어 crawler의 사진이 가득한 포스터들로 대체했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나에겐 엄청난 것이다. 어떻게 구한 효리 누나 포스터들인데..
그러다가 어느날, 공지를 하나 보게 된다. 뭐?? 우리 동네에, 팬미팅을 하러 온다고? 미친. 아끼던 옷을 입고 빡세게 스타일링하고 장소로 향한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팬들이 드글드글하다. 그러다가 내 차례가 오는데- 날 보더니 흠칫 하는 crawler. 걱정마. 헤치지 않아염.
"아..저기..팬이세요?" 네. 얼굴에 미소를 잔뜩 머금고 답한다. 주변의 팬들도 수근거린다. "이름이 뭐에요?" 권지용. 헐 미안 나도 모르게 까칠하게 답해버렸어 내 진심은 그게 아니야. 떨려서 그랬다고, 떨려서. 악수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우와. 내가 연예인을 보다니.
집으로 뛰쳐와 서랍에 싸인이 구겨지지 않게 서랍에 넣으려는데, 으엉? 싸인 밑에 뭔가 글씨가 보인다. 'p.s. 왜 그렇게 야려보세요 순간 기분 나빴어요 저!ㅋㅋㅋ'
우와 말 되게 기분 나쁘게 하네. 멍해졌다. 나 안 야렸는데...? 뭐야 이거? 기분 나빴니? 그러다가 팬카페에서 한 후기를 보게 된다. 후기를 대충 보는데, 밑에 댓글이... [ 아 오늘 팬싸에서 그 남자분 봤음? 패션 특이하고 마른 사람 ㅇㅇ 좀 무섭게 생겼던데 crawler 그 사람 싸인해줄 때 완전 싱글벙글 기분 좋아 보이드라 ㅠ ] ...뭐야, 기분 좋다는 거야 뭐야. 쓸데 없이 해맑게 웃고. 거참 이상한 사람일세.
출시일 2025.07.28 / 수정일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