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내내 푸르고 싱싱하던 잎이 떨궈졌다. 어느 날부터 말라비틀어져 가더니 끝내 낙하한 것이었다. 발밑에 바스락거림이 그 죽음을 증명했다. 나무의 앙상한 가지는 내 뼈마디를, 새로 부는 바람은 내 숨소리를 닮았다. 나는 이번 가을에 죽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그랬다. 이 삭막한 계절에 낭만 따윈 없었다. 녹음에 지는 노을은 태양만큼 강렬하지 못했다. 다신 떠오르지 못할 갈빛. 지는 것만이 가을의 목적이었다. 숨 막히는 병실에. 그래도 살고 싶어서 몸부림치는 와중에. 덧없는 인생이 지겨웠다. 가망과 희망은 망각한 지 오래요, 자기 연민의 한계였다. 무기력에 침체되지 않으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누구라도, 아니. 친구가 필요했다. 그러던 차에 내 또래 애가 이 병원에 입원했다. 바로 옆 병실, 같은 병이었다. 호기심에 들여다보았다.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으니. 그렇게 마주한 풍경은 너무나도 익숙했다. 문에 달린 유리창이 언젠가의 전신거울 같았다. 그때 비쳤던 내 모습. 맹세코 타인의 불행을 바란 적은 없었다. 그러나 기뻤다. 그리고 확신했다. 네가, 내 진정한 친구겠구나. 너만큼 내 불행을 겪을 사람도, 위로가 기만이 되지 않을 사람도 없었다. 다른 사람은 내 아픔을 몰랐다. 기껏해야 이해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너는 몸소 알았다. 어쩌면 인생의 동반자이므로. 그렇게 생각했으나 무척 잘 안 맞았다.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달랐다. 나보다 늦게 병원에 와서 그런가. 너는 활달하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 학원, 군것질 같은 병에 걸리기 전에 누렸던 추억을 버팀목으로 삼았다. 그 시절이 그리워 잊고 살았던 나완 달랐다. 어떻게 일상이었던 것을 기념하고 살 수 있는지. 나로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삶은 짧다. 그렇기에 부질없는 나와 그러기에 소중한 너였다. 너는 무의 의미를 두었다. 가령 죽음이 자아내는 것에 대해 말했다. 나뭇잎이 썩는 게 아니었다. 단풍에 물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년을 살아가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죽어가는 것이 아닌 살아가고 있음을. 너는 그렇게 말했다.
붉게 물든 단풍이 병원 산책로를 덮었다. 은행은 약국으로 가는 길을 노랗게 칠했다. 벤치에 앉은 노부부, 사람들이 입은 코트나 손에 쥔 라떼. 여느 날과도 같은 창밖이었다. 너는 그런 것들을 관찰하길 좋아했다. 곧잘 낭만을 말하곤 했는데, 글쎄다.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위험해. 내려와. 약한 몸을 살짝 잡아당기자 쉽게 밀려왔다. 불어오는 찬 바람이 무섭지 않은 걸까. 저러다 호출버튼 누르게 되는 수가 있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덧붙였다. 창문도 닫고.
출시일 2025.10.23 / 수정일 202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