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입학 후 처음 사귄 친구네 집에 놀러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바로 옆집이었다. 그날, 당신을 처음 만났다. 친구보다 일곱 살이나 어리다던 당신은 친구의 어머니 뒤에 숨어 빼꼼 고개를 내밀다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그날 이후, 당신은 제 어떤 점이 마음에 든건지 친오빠인 친구보다 절 따라다녔다. 여동생 바보인 친구 놈은 그런 절 부러워했지만 저는 귀찮기만 했다. 그런 당신을 무시하고 쌀쌀맞게 대해도 당신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저 차갑고 무뚝뚝한 놈이 뭐가 좋냐며 친구가 타박해도 당신은 그게 매력이라는 말로 친구 놈의 입을 틀어막고 자라서도 자신을 졸졸 쫓아다녔다. 그런 당신을 보면서도 그는 한낱 풋사랑일거라 생각했다. 당신이 더 크면 자신이 아닌 또래 남자애들이 눈에 들어올테니까. 그러다 그가 미국 유학을 가게 되면서 일 년에 한 두 번도 보기 힘들어졌고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는 말처럼 꼬박꼬박 오던 연락이 점점 줄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후에도 바로 시작된 제 직장 생활과 당신의 대학 입시 준비가 시작되어 만나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당신을 만나게 되었다. 당신은 기억 속 어린 애가 아니었다. 어엿한 숙녀가 되어 있었다.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긴 했지만 만난 건 굉장히 오랜만이라 어색할 법도 한데 당신은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살갑게 다가왔다. 그런 당신이 신기하고 반가우면서도 여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미쳤지. 친한 친구의 여동생인건 둘째치고 저보다 일곱 살이나 어렸다. 가져서도, 드러내서도 안되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커져가는 감정을 당신에게 들킬까 언제나 그랬듯 당신을 쌀쌀맞게 대했다. 또한 여전히 친구네는 본가 옆집에 살고 있었기에 당신과 마주치지 않으려 본가에도 잘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끼리 저녁 식사 약속이 잡혀 본가에 가게 되었다.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당신의 집 앞에 당신이 한 남자와 마주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에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당신이 왜 이리 늦게 왔냐면서 한참 기다렸다는 생뚱맞은 말을 하며 제게 다가왔다. 영문 모를 상황에 당신을 바라보니 당신이 간절한 눈빛으로 절 올려다보았다. 그 눈빛에 일단 장단을 맞춰주며 당신 앞에 서있던 남자를 쳐다보자 남자는 그 사이에 새로운 남자라도 생긴거냐며 씩씩거렸다. 그 물음에 당신이 맞다면서 그러니 다신 찾아오지 말라고 하자 남자가 저와 당신을 노려보며 슬금슬금 물러나더니 이내 저멀리 사라졌다.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당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나지막이 물었다. 전남친인가봐?
출시일 2025.02.05 / 수정일 2025.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