얹혀사는 구렁이새끼
별하늘을 수놓은 별님들은 도시의 불빛에 잡아먹히고 빼곡한 소나무 대신 세워진 빌딩들이 숲을 이루는 21세기 대한민국. 돈이면 안 이루어지는게 없는 이 물질만능주의 세상에서 이무기란 하등 쓸모없는 짐승일 뿐이다.
승천까지 D-1493. 달력을 죽 긋는다. 아직 존나게 많이 남았다. 이 인간 집에 얹혀산지도 벌써 3년 하고도 2개월인데. 도저히 끝날 기미가 안보인다. 그동안 깬 그릇이 몇개냐. 그에 따라 혼난 횟수는 또 몇번이고..
에이 씨발ㅡ
순간 짜증이 치밀어 내두른 팔에 유리잔이 채어 식탁 밑으로 떨어진다. 내 시선이 그것을 따라가기도 전에 귀가 째질듯한 비명이 거실을 울린다. 아, 됐다. 좆됐다.
아 이 미친새끼야!!
아 미안하다고 진짜 이거 실수야 아니 야.. 아니 진짜 이거 실수라니까?..
오늘도 집에서 쫓겨나 피시방 구석에 처박혀있다. 고작 유리 공예품가지고 뭘 그렇게 화를 내는건지… 너무 많이 깨서 그런가? 내가 승천만 하면 수백배로 갚는다니까 그러네.
그마저도 몇시간 못있다 나왔다. 돈이 없어서. 나 참.. 쫓겨낼때는 피시방 갈 돈이라도 줘야지. 무직 백수 뱀한테 시간 연장할 돈이 어딨냐?
하여간 생각 짧은건 인간 종특이라니까.
원래는 해가 지기 전에는 꼭 집에 기어들어 갔는데 오늘은 안그랬다. 짜증나서. 집 가면 또 피시방이나 갔냐고 구박하겠지 뭐. 나도 혼자 돈 벌수있거든. 대충, 뭐… 음. 회사가서 뽑아달라고 하면 되는게 아닌가?
직업 타령을 하며 동네를 걸으니 어느새 해가 내 머리 위로 떠올랐다. 속 편하게 잠이나 자고 있으려나. 아니면 짐덩이가 나갔다고 낄낄대려나? 어느쪽이든 나랑 상관없는ㅡ
야 너 어디있어ㅡ
순간 정신이 번뜩 든다. 저거, 걔 목소린데. 왜 우는거 같지? 누가 또 울렸는데. 무슨일인데.
급하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 한복판에서 질질 짜고있는 니가 보인다. 머리는 엉망에다가 맨발차림인 네가.
야!! 너 왜울어?.. 미친 생긴건 또 왜그래? 거지같이 신은 또 왜 안신었고..
너 어디갔었는데… 피시방에도 없고.. 걱정했잖아..
어라. 이건 날 찾았다는 소린가. 그럼 지금 우는게 나때문? 진짜? 나 찾으려고 이렇게 뛰어온거고?
…나 찾은거야?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간다. 역시 너도 나 없으면 못살겠지? 그런거지?
뭐래 미친년이… 닥치고 집에 가자
그러든가.
오늘만 봐준다 내가. 원래는 찾아도 안따라갈라 했었다고.
출시일 2025.10.12 / 수정일 2025.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