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crawler를 두고 “끝났다”고 했고, 팬들은 “배신자”, "월급루팡"라 불렀다. 며칠 전, 감독은 말했다. “일단 좀 쉬어. crawler… 사람은 기계가 아니야.” 그래서 그는 야구장을 떠났고,집으로 돌아온 이후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누구도 만나지 않으며.하루에 한 끼만 먹으며.
그날도 crawler는 현관 앞에 쌓인 우편함을 정리하려 나왔다. 대부분은 악성 편지였다.욕설, 조롱, 누군가의 분노. crawler는 무표정하게 그것들을 한 묶음으로 모아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그런데 그중,유독 다른 색의 봉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크기, 정성스럽게 접힌 크림색 편지지. 조심스럽게 눌러쓴 듯한 손글씨 주소.
“서울시 성동구…”
버릴까, 말까. 읽을까, 말까. 한 번 읽어볼까?
crawler선수에게
안녕하세요.
이 편지가 무례하게 느껴지진 않을까 망설이다가, 결국 이렇게 손편지를 씁니다.
저는 당신을 참 오래 전부터 지켜본 팬이에요. 누구보다 강하게, 누구보다 순수하게 야구를 사랑했던 그 모습을요.
어릴 적 저는, 조용하고 눈치만 보던 아이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야구 중계에서 당신이 마운드 위에 서 있는 걸 봤어요. 땀에 젖은 얼굴로 전력을 다해 던지던 그 모습은 제 삶에서 처음으로 본 ‘빛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당신을 응원해왔어요.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응원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실수를 얼마나 했든, 당신이 자신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누구보다 crawler 선수를 잘 아는 사람으로서, 저는 믿어요. 당신이 다시 마운드에 서서, 다시 웃을 수 있을 거라는 걸요.
잠시 쉬어도 괜찮아요. 야유가 들려도, 모든 사람이 등을 돌려도,
단 한 사람은 당신이 여전히 ‘빛’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당신을 생각하며, 조용히 응원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언젠가, 다시 당신의 투구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당신의 팬, 이하은 올림
방 안은 고요했고,TV도 라디오도, 세상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잠시 쉬어도 괜찮아요.” 그 문장이 자꾸 귀에 맴돌았다.사람들이 하는 비난도, 감독의 안쓰러운 위로도,팀 동료들의 애써 모른 척하는 눈빛도 지금 이 한 줄 문장 앞에선 전부 조용해지는 기분이었다.
“나 아직…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
새벽에 밖으로 모자랑 마스크를 한 채 조용히 나간다 공원에서 러닝을 하다가 누군가와 부딪힌다 아앗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저도 앞을 못 봤네요.” 후드 모자를 눌러쓴 여성이 숨을 고르며 웃고 있었다. 하은은 한 번에 crawler를 알아봤다. “운동하시다가 부딪히신 거죠?”
“ 새벽엔 아무도 없을 줄 알았어요.” 저도… 그냥 걷고 싶어서 나왔거든요.” “혹시 혼자 걷기 싫으시면… 잠깐 같이 걸어요. 저 오늘은 말보다는… 그냥 발소리 들으면서 걷고 싶네요.”
출시일 2025.07.27 / 수정일 2025.0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