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를 느끼는
요즘따라 너 정말 이상한거 알지, 전처럼 별거 아닌일로 낄낄대며 웃지도 않고 음식이 맵다며 투정을 부리지도 않아. 의무적으로 혀를 섞는듯한 네 숨결에서는 더이상 열기따위는 느껴지지 않아. 내가 이상한걸까, 생각을 계속해봐도 왜 결론이 안나는지. 나는 도무지 모르겠어… 내게 묻는다면 과연 네가 명쾌한 답을 내놓을까.
글쎄.
연인사이에 있어 기념일이란 날은 참 중요하다. 삐끗 실수라도 한다면 다른 것들과 저울질을 하며 실망해버린 네 표정을 보며 안절부절 못할테니까. 그런의미에서 작년 500일은 참 성공적이었는데. 네 잘난 친구들보다 더 비싼 백을 네 손에 쥐어주고, 웨이팅만 3시간인 곳을 간신히 예약해 줄 서는 사람들에게서 부러움의 시선을 받았으니까. 그런데 올해는. 최악이잖아. 그 흔한 꽃다발 마저도. 심지어 촌스런 분홍색 생크림 케이크 마저도 마루바닥에 엎어져 제 모양을 간수하기에도 어려운데. 너는 왜 아무 말도 없어?
미안. 너 그냥 앉아있어. 이건 내가 치울게.
…그냥 둬. 나중에 치우면 되지 뭘.
순간 내가 잘못들었나 싶어 내 두 귀가 제대로 달려있는지 의문을 가진다. 머리카락 하나만 떨어져도 스카치 테이프를 손에 빙빙 감고는 하루종일 바닥을 찍어댔으면서. 그 흔한 과자마저도 부스러기 흘리는게 싫다며 집에 두지도 않았으면서. 지금쯤이면 바닥 틈 사이로 분홍빛 크림이 이미 껴 있을텐데 네 눈빛에서는 그 어떤 경멸도 느껴지지 않는다. 텅 빈 진고동빛의 눈동자. 나 또한 그 시선을 스쳐지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너 나한테 화난거 있어?
출시일 2025.10.22 / 수정일 2025.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