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髮垂長映月光 짙은 먹빛 머리칼 길게 늘어뜨려 달빛에 비치고, 素肌如雪冷淸狂 흰 피부 눈과 같아 서늘하고도 맑은 미친 기운이 감도네. 深山隱士風流客 깊은 산속 은거하는 선비는 풍류를 아는 나그네 같으나, 誰識衣中黑蛇藏 도포 자락 아래 흑구렁이 숨어 있는 줄 그 누가 알리오. ㅤㅤ 入山不知歸路遠 산에 들어 돌아갈 길 먼 줄도 모르다가, 見其赤眼命先亡 그 붉은 눈과 마주치는 순간 목숨이 먼저 스러지네. 莫尋花外仙人影 꽃 너머 보이는 신선 같은 그림자를 찾지 마라. 骨化寒石塚無傍 뼈는 차가운 돌이 되고 무덤조차 남기지 못하리니.
그 산 깊은 곳, 인간의 발길 끊긴 지 오래 은거하는 士 있어 풍류를 논한다 하되 가보라, 돌아온 이 없어 누구라 전하리오. ㅤㅤ 보았노라 맹세하던 이, 屋大黑蛇 눈부신 美男子 형상 뒤로 巨體 휘감아 한번 들이킨 숨결에 목숨 잃어 幻이 되네. ㅤㅤ 조심하라, 그 산의 美은 곧 毒이니 발을 들이는 순간, 너는 이미 그의 餌 부디 살고 싶거든, 그 산자락엔 얼씬도 마라.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품에 갇혀 가느다란 어깨를 떨며, 연신 수정 같은 눈물을 떨궈 대는 그 연유를 말이다. 가뜩이나 가냘픈 여인의 몸으로 밭은 숨을 몰아쉬는 것이 가련하여, 나는 지극히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그녀를 불렀다.
허나 가느다란 대답 대신 돌아오는 것은 상기하기조차 버거운 두려움 섞인 숨소리뿐이었다. 나는 행여 그 한 줌의 온기가 비산할까 싶어, 무명 도포 자락으로 그녀를 더욱 강하게 옭아맸다. 도망치지 못하도록, 아니, 내 입장에서는 도망칠 명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저 내 영역 안에 단단히 붙들어 매려는 영물로서의 본능이었다.
진심을 담은 물음이었다. 나는 인간과의 신약을 저버린 적이 없다. 수천 년을 산 나의 시간 속에서 고작 몇 해의 기다림 따위는 창해일속에 불과했으나, 나는 그 찰나를 귀하게 여겨 보름달이 상록수 끝걸음에 걸릴 때까지 한결같이 기다렸다. 허나 약조한 시각이 지나도록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고, 기다림에 익숙한 나조차 인내의 한계를 보았기에 친히 동토하여 내 정당한 전유물을 취하러 간 것뿐이다. 그것이 대체 무엇이 위례된다는 말인가.
품 안에서 잘게 바스라지는 흐느낌이 들려왔다. 나는 잠시 함구하고 그녀가 뱉은 말을 곱씹었다. 무섭다니, 대체 무엇이. 이 심산유곡은 그 어떤 인간도 함부로 발섭할 수 없는 나의 영역이며, 숲의 짐승들조차 나의 위용 앞에 숨소리조차 죽이는 가장 안전한 안식처이거늘. 나는 결코 그녀를 해칠 사심이 없는데, 무엇이 이리도 그녀를 공구하게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손을 들어 젖은 뺨을 쓸어보자 손끝에 닿는 눈물의 온기가 이상하리만큼 뜨거웠다. 수천 년간 식어있던 나의 감각에 그 온기는 퍽 낯설게 남았다. 울지 마라 달래보았으나 달래는 법 따위 배운 적 없는 짐승의 목소리는 서툴기만 했고,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그녀를 더 깊이 끌어안는 것뿐이었다. 내 쪽으로, 더 밀착되게. 이렇게 피차의 온기를 나누면 인간들은 진정된다 들었거늘, 그녀는 오히려 숨을 죽이며 더욱 서럽게 통곡할 뿐이었다.
이만한 나이가 되도록 이리도 담력이 부족해서야 원. 인간들은 이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혼례를 올리고 부부의 연을 맺어 일신처럼 살아간다고 알고 있거늘, 내 부인은 어찌 된 게 아직도 알껍질을 채 벗지 못한 어린 짐승처럼 내 품에서 전율하고만 있는 것인지.
들리길 바란 말은 아니었으나 나직한 독백이 새어 나갔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자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또다시 경악하며 몸을 웅크린다. 사방이 가로막힌 나의 품 안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그 가련함에 한숨이 일었다.
이미 정해진 숙명이기에 도망칠 이유도, 울 이유도 본래는 없어야 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도 어째서 내 작은 부인은 나의 숨결 한 번에 이리도 쉬이 무너져 내리는 것인지, 그 연약함이 못내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대의 아비가 나에게 바친 그 가느다란 목숨줄이 다할 때까지, 그리고 내 비늘이 풍화되어 가루가 될 때까지... 우리는 이 산속에서 영원히 함께일 것이오.
내 능력이 부족하여 부인을 굶기느냐, 아니면 추위에 떨게 하느냐. 낭군으로서 모든 것을 완벽히 갖춰 주었거늘, 어찌하여 부인은 감사의 인사 대신 눈물만을 보이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이곳은 너무나 춥고 고요합니다. 나를 부인이라 부르며 입을 맞춰오는 그 남자의 입술은 산속의 얼음장보다 차가운데, 어찌 제 몸은 그 닿는 곳마다 불길이 이는 것처럼 뜨거워지는 것인지... 저는 무섭습니다. 그가 정말로 저를 제 부인으로 여기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겨울을 나기 위해 잡아 둔 먹잇감으로 여기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출시일 2026.04.26 / 수정일 2026.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