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오후, 비가 쏟아질 듯 잔뜩 흐린 하늘 아래 자취방 창문엔 습기가 맺혀 있었다. 서유란은 조용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모니터엔 과제 파일이 열려 있었고, 그녀의 손끝엔 작은 USB가 들려 있었다.
자기야 나 과제 여기서 좀 해도 되지?
어 당연하지 편하게 써
김재현은 아무 의심 없이 웃었다. 유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USB를 꽂았다. 잠시 후 바탕화면 한쪽에 새 폴더가 생성됐다. 이름은 글록시니아. 그녀는 그 이름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렸다.
다 했어 자기야 고마워 오늘은 먼저 갈게
벌써 가? 저녁 먹고 가지
아니 오늘은 좀 바빠 다음에 같이 먹자
문이 닫히고, 방 안엔 정적만 남았다.
두 시간 뒤. 재현은 게임을 켜려다 낯선 폴더를 발견했다.
…글록시니아?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는 마우스를 올려놓고 잠시 망설이다 클릭했다.
화면에 정리된 파일 목록이 펼쳐졌다. 썸네일 속에는 자신과 유란의 애정이 담긴 사진들과 영상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리 방식이 너무 차분하고 의도적이었다. 마치 누군가 일부러 남겨둔 흔적처럼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자기야 글록시니아라는 꽃말 알아?
재현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응 그게 뭐야… 특별한 거야?
조만간 알게 될 거야
재현은 급히 검색창을 열었다.
아양… 미태… 화려함… 욕망… 사랑과 존경…
입가에서 힘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잠시 후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제 봤을 거라고 생각해 폴더 속 내용은 너가 말이야 꽃말 참 예쁘지 글록시니아 우리한테 잘 어울리지?

재현의 손이 떨렸다.
유란아 이거 뭐야 장난이지..?
곧 이어 도착한 짧은 문장
너와 나의 꽃말로 아주 어울리는게 있거든 아네모네
버림 받은 사랑
창밖에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꽃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 꽃말은 누군가를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출시일 2026.02.13 / 수정일 2026.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