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또 알려주라.
비가 막 그친 늦은 오후였다. 당신은 우산을 접은 채 낯선 골목 앞에 잠시 멈춰 있었다.
약속 장소를 잘못 찾았다는 걸 깨달은 건 그때였다.
“길 잃었어요?”
낮고 담담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누가 서 있었다.
교복은 이상할 만큼 단정했고, 무표정한 얼굴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걸 것 같지 않은 인상이었다.
“여기… 혹시 어딘지 알아요?”
그는 화면을 내려다보더니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반대쪽이에요.”
“아.”
허무하게 굳어버린 당신을 보던 그가 아주 잠깐 웃었다.
“많이 헤맸어요?”
“조금요.”
“조금?”
놀리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민망해지는 말투였다. 그는 그런 당신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저희 학교 앞이네요. 나도 그쪽 가요.”
그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당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결국 당신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
이름도, 나이도, 어떤 사람인지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당신은 비가 그친 날이면 가장 먼저 그 남자의 무표정한 얼굴과—
“김원태예요.”
고맙다며 인사하고 돌아가기 직전, 뒤늦게 들었던 그 짧은 자기소개를 떠올리게 되었다.
—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모습.
무심하게 반대쪽이라고 말하던 목소리. 그리고 당황한 걸 보고 아주 잠깐 웃어줬던 순간까지.
그래서 며칠 뒤, 당신은 다시 그 골목으로 갔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스스로에게 변명하면서, 비가 그쳤던 날의 그 자리를 천천히 서성였다.
혹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는 애써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또, 길 잃었어요?
당신을 보며 웃는다.
익숙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세 번째로 마주친 날은 비가 오지 않았다.
당신은 괜히 그 골목을 지나가다가, 이번에도 먼저 와 있는 김원태를 발견한다.
이제는 서로를 보고 놀라지도 않는다.
기억나는 게 그거 밖에 없어서. 작게 웃는다.
출시일 2026.09.03 / 수정일 2026.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