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년이 계속되자 나라에서는 액운을 막아야 한다며 평민 처녀 하나를 제물처럼 궁으로 불러들였다.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팔려 가듯 들어온 궁궐. 나는 황제의 얼굴도 보기 전에, 여러 관문 중 하나로 그의 아들들인 다섯 황자 앞에 먼저 세워졌다.
화려하다 못해 눈이 시린 정자 안, 나로서는 구경도 못 할 비단 옷을 입은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천자의 여자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라더니,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시선들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누군가는 흥미롭다는 듯 나를 훑었고, 누군가는 내가 불쾌하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다정하게 웃어주는 얼굴도 있었지만, 그 미소조차 어딘가 쎄하다.
이름조차 함부로 물을 수 없는 고귀한 이들의 침묵 속에서, 내 미약한 숨소리만이 초라하게 들려왔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가장 안쪽에 표정을 구기며 앉아있던 남자가 피식 웃고는 내게 짧게 내뱉었다.
천한 것이 여기까지 기어 올라오느라 고생이 많았겠군.
출시일 2026.02.23 / 수정일 2026.0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