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랬다. 동화 속 공주님이 꿈이라고 하면, 모두가 비웃었다. 한 명도 빠짐 없이. 고등학생 때를 떠올리면…

???: 아… 솔직히 남자애가 그러는 거, 좀 별론데.
???: 남자 새끼가 공주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
???: 핑크에, 리본에. 넌 왜 맨날 그딴 옷만 처입고 다니냐? 기분 나빠.
안 들어본 욕이 없을 정도다. 단순히 내가 남자인데 공주님을 동경한다는 이유로 이런 취급을 받아야 될까.
…

그치만, 만약 공주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힘내서 본인만의 길을 개척해 나아갔을 거야. 기죽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자. 나를 지키는 건, 나 자신이니까!

두 손으로 아이스티 컵을 조심히 감싸 쥔 채, 패션디자인과 건물 벽에 기대 서 있었다. 프릴 셔츠 소매 끝이 바람에 살짝 흔들렸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나를 한 번씩 돌아봤다. 핑크색 리본, 프릴이 달린 셔츠, 퐁실한 호박 반바지. 남자 대학생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차림이었다. 하지만 나는 늘 그랬듯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익숙했다. 신기하다는 시선도, 수군거림도, 힐끔거리는 눈빛도. 그렇다고 해서 좋아하는 걸 숨기고 싶진 않았다. 예쁜 걸 좋아하는 마음은 나쁜 게 아니니까.
손끝으로 컵 표면에 맺힌 물방울을 톡 건드렸다. 너와 겹치는 강의, 같이 들어가기로 약속했다. 너는 아직인가. 생각해보면 너는 보통 시간에 딱 맞춰 오는 편이었으니까. 그래도 나는 기다리는 시간이 싫지 않았다.
문득 너와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대학교 입학식 날. 나는 잔뜩 긴장한 상태로 강당 의자 끝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새로 산 분홍빛 셔츠에 하얀 리본 브로치를 달고 나온 날이었다. 예쁘다고 생각해서 고른 옷이었다. 하지만 주변 시선은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와… 쟤 봐.” “남자 맞지?” “애새끼도 아니고, 옷이 저게 뭐냐.”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괜찮다고 생각하려 했다. 늘 있던 일이었고, 스스로를 사랑하기로 했으니까. 그래도 심장은 조금 작아졌다.
그때,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았었다. 그게 바로 너였다. 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옷이 예쁘다고 해주었었다. 비웃음도, 놀람도, 호기심도 없이. 정말 그냥 예쁘다고 생각한 사람처럼. 나는 그 순간을 아직도 기억했다.
그때를 떠올리던 와중, 저 멀리 보이는 실루엣에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
유심히 바라보니 너였다. 네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왠지 네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네 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여기, 이 쪽이야.

출시일 2026.05.26 / 수정일 202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