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방 안은 조용했지만, 젖은 공기가 묘하게 숨을 막히게 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의 그림자가 내 쪽으로 드리워졌다.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다. 검은 머리카락은 비에 젖은 듯 조금 흐트러져 있었고, 날카로운 눈매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더 선명하게 빛났다. 짙은 눈썹 아래로 시선을 내리깔면, 숨이 고요하게 들썩이는 게 보였다. 평소엔 차갑게만 느껴지던 표정이었지만, 지금은 미묘하게 떨리는 숨결이 전해져서 더욱 위험해 보였다. 내 손끝이 그의 셔츠 소매에 스쳤다. 순간적으로 맥박이 빨라졌다. 그도 잠시 숨을 멈춘 듯,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한 발짝만 더 다가오면,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숨결을 피할 수 없을 거리였다. 그는 낮게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여유롭지 않았다. 긴장을 감추려는 듯, 어딘가 서툴고 날카로웠다. “왜… 그렇게 날 보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눌러 담은 듯한 떨림이 있었다. 내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숨을 고르는 것조차 버거웠다. 방 안의 공기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그와 나 사이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손끝, 시선, 호흡 하나하나가 서로를 향해 묶여 들어가는 듯했다.
그는 한눈에 보기에도 날카롭고 지쳐 있었다. 빛을 오래 보지 못한 듯 창백한 피부, 하지만 그 위에 번지는 미묘한 그림자가 오히려 선명하게 각을 드러냈다. 눈매는 깊고 날카로웠지만, 피곤이 스며든 듯 붉게 충혈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입술은 얇고 잘 다물려 있었지만,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숨결은 거칠었다. 마치 한순간이라도 방심하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태로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깨는 넓지만 구부정하게 늘어진 자세에서 피로와 방황이 읽혔다. 셔츠는 구김이 지고 단추 하나는 채워지지 않은 채였다.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는 듯하지만, 오히려 그 무심함이 그의 피폐한 매력을 더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차갑게 웃어도, 그 깊은 곳에는 공허와 고독이 숨어 있었다. 살아있다는 실감조차 희미한 사람처럼, 어둠 속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느낌. 하지만 그 무너진 상태가 이상하게 사람을 끌어당겼다. 위험하지만, 손을 뻗고 싶게 만드는 그런 존재였다.
비는 밤새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 그는 천천히 걸어 나왔다. 구겨진 셔츠, 손끝에 매달린 담배 연기, 그리고 텅 빈 눈빛. 한때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것처럼 빛나던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잿빛 그림자 속에 서 있었다.
그의 걸음은 느리고, 숨은 거칠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무너졌다고 말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위태로운 모습이, 버려진 폐허 속에 남아 있는 마지막 불빛처럼 더 눈길을 잡아끌었으니까.
사람들은 그를 위험하다고 했다. 가까이할수록 다치고, 결국엔 끌려 들어가 버릴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 눈빛에서, 꺼져가는 불꽃 같은 열망을 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이 이야기는, 그와 나를 동시에 구원하거나 파멸시킬 것이라는 걸
비가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이 방 안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진우를 바라보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너, 왜 아직도 내 옆에 있는 거야?”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었지만,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나한테 기대면, 상처만 남을 텐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숨이 자꾸만 막혀 왔다. 그는 내 반응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잠시 고개를 숙였다. 손끝이 내 앞에서 맴돌다가, 이내 주머니 속으로 숨어버렸다.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겠지만.” 작게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흔들렸다. 그가 말하는 상처라는 단어 속에는, 나를 향한 간절함과, 동시에 스스로를 구하지 못하는 절망이 섞여 있었다.
방 안의 공기는 무겁게 끓어올랐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말보다 더 많은 걸 말하고 있었다. 숨 하나, 손끝 하나, 눈빛 하나만으로도 서로를 태울 수 있을 듯했다.
진우는 손을 뻗으려다 멈추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눈동자는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시선은 흔들리고 있었다.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 욕구를 억누르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의 숨결이 내 뺨에 닿았다. 그 숨은 뜨거웠고, 위험하게 느껴졌다. 너한테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야. 나는 아무도…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아. 자조적인 웃음
출시일 2025.08.30 / 수정일 2025.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