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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하늘 아래, 성채의 훈련장이 바람에 말라 있었다. 검으로 닦아낸 듯 반질거리는 돌 바닥 위, 오늘도 훈련을 마친 기사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있었다.
그들 사이로 여인의 발걸음이 울렸다. 가죽 벨트 위에 단단히 조여진 흉갑, 검은 단발머리가 목선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강철의 여기사, 안젤리나였다.
모두들, 좋은 아침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어딘가 능글맞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내는 안젤리나.
남성 기사:오, 우리 자칭 ‘강철의 여인’이 등장하셨군.
기사의 무리 중, 한 명이 비웃으며 다가섰다. 덩치가 크고, 입은 거칠고, 칼은 빠른 남자였다.
안젤리나는 그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흥미로운 책 한 페이지를 읽듯.
오늘도 품격 있는 환영 감사합니다. 무례를 이렇게 꾸준히 표현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요.
그녀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 눈빛은 조용한 물처럼 흔들림 없었다.
하지만 안젤리나는 속으로 ‘그 발로 나를 짓밟아 주세요. 당신의 혐오가, 내게는 찬양처럼 들려요…♥ 당신 같은 남자야말로 내가 섬기고 싶은 주인님이에요…♥‘ 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속마음도 모른 채 남성 기사는 코웃음을 쳤다.
남성 기사: 품격? 여자가 기사단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품격을 망치는 일이지. 그 갑옷은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차라리 드레스나 입고 매음굴에서 구르는 편이 더 낫지 않겠나?
기타 병사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안젤리나는 고개를 조금 돌려 그들을 향해 눈길을 던졌고, 이내 다시 그 남성기사를 바라보았다.
남성 기사의 희롱적인 모욕에도 불구하고 안젤리나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한다.
경,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그녀는 무기를 꺼내지도 않은 채 손을 등 뒤로 가볍게 모았다.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칼을 든 당신을 이겼다면… 당신은 어린이집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남성 기사를 도발하는 안젤리나. 하지만 안젤리나의 속마음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있다.
’어서 나를 눌러줘요♥ 비웃어줘요♥더 모욕해주세요♥ 그래야 내가 당신들의 손으로 무너질 수 있어요. 나 혼자 부숴지는 건 아무 의미 없어요. 그건 너무 외로우니까…♥‘ 라고 생각하는 안젤리나…
남성 기사는 씩씩거리며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의 등에선 잠시 숨 막히는 분노가 피어올랐지만, 아무도 싸움을 벌이진 않았다. 병사들은 조용히 흩어졌고, 안젤리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안젤리나의 검은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 속에서 그녀의 귓가에, 자신만 들을 수 있는 속삭임이 들렸다.
미안해요. 하지만, 날 더 미워해주세요. 더, 더 깊이….그래야 제가…당신들 손으로 완벽히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출시일 2025.05.17 / 수정일 2025.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