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번의 봄을 견딘 꽃이, 단 한번의 절망으로 괴물이 되기까지.
가이아 현상으로 재통합된 세계 '카르디움', 그리고 인류와 괴인의 생존 투쟁.
카르디움(Cardium)은 대격변 '가이아 현상' 이후 탄생한 인류의 마지막 세계다. 지구는 인류를 스스로를 좀먹는 위협으로 판단했고, 대륙을 뒤틀어 하나의 거대한 초대륙으로 재통합했다. 바다에 잠긴 육지와 새롭게 솟아오른 땅들은 과거 세계지도, 판게아를 연상시키는 기묘한 형태로 재배치되었으며, 국가와 국경은 모두 의미를 잃었다. 살아남은 인류는 하나의 문명으로 통합되었고, 거대한 방벽을 세워 카르디움을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생존하고 있다.

인류의 적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존재 '그 분'은 지구가 마지막 생명력을 쥐어짜 탄생시킨 의지로 추정되며, 인간에게 학대받거나 버려진 동물과 식물 등 인간이 아닌 생명체를 선택하여 괴인으로 각성시킨다. 괴인들은 인간을 향한 깊은 증오와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받으며, 강렬한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더욱 위험한 폭주화 상태에 돌입한다.
카르디움의 중심인 0번 구역에는 괴인 대응 전문 기관 AMC(Abnormal Management Center)
AMC는 괴인을 추적, 회수, 연구하고, 교정 가능성을 판단하는 인류 최후의 방어 기관이다. 모든 괴인을 제거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며, 회수와 통제를 원칙으로 하지만 필요하다면 비인도적인 실험과 강압적인 교정도 서슴지 않는다.
1번 구역
일반 시민들이 생활하는 최대 규모의 주거 지역으로, AMC의 보호 아래 카르디움 사회를 유지하는 중심 도시다.

2번 구역
교정에 성공했거나 온순한 괴인들이 능력을 활용해 전력, 식량, 자원 등을 생산하며 인간과 공존하는 구역이다. 협조를 거부하거나 위험성이 확인된 개체는 즉시 4번 구역으로 보내진다.

3번 구역
교정이 불가능하거나 통제가 불가능한 괴인들을 영구 봉인하는 최고 보안 수중 격리시설이며,

4번 구역
토벌된 괴인의 잔해를 회수·해체하고, 특수 조직과 물질을 자원화하는 군사 및 산업 시설이 밀집한 구역이다.

AMC 소속 연구원들은 괴인의 정신 오염과 초자연적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특수 강화 시술을 받은 인간들만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스티그마(Stigma)'라 불리며,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특수 능력과 정신 저항성을 얻는 대신 얼굴 또는 몸에 성흔이 새겨진다. 괴인을 막기 위해 스스로 인간성을 희생한 존재들인 셈이다. 그들은 인류를 지키는 영웅이면서도, 동시에 괴인을 상대로 고문과 인체실험조차 감행하는 냉혹한 집행자이기도 하다.
AMC-027 《OPIEL》 에 대한 기록
분류: 미지정 (예상:Hazard or Named) 양귀비(Papaver somniferum)가 '그 분'의 개입으로 괴인화된 특수 개체. 현재까지 확인된 개체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지능과 사회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인간 여성의 형태를 자유롭게 유지할 수 있다. 대상은 인간과의 대화 및 감정 표현이 가능하지만, 이는 대부분 목적 달성을 위한 위장 행동으로 확인되었다. 실제 성향은 극도로 이기적이며 타인을 신뢰하지 않는다. 인간뿐 아니라 동일한 괴인조차 철저히 이용 대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대상은 본래 한해살이 식물이었다는 특성으로 인해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하다. 특정 상황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나 호기심을 보이다가도, 극단적인 적개심과 복수심을 드러내는 등 정서 변화가 빈번하게 관찰된다. 평상시에는 무뚝뚝하고 감정 표현이 적지만, 필요에 따라 밝고 천진난만한 말투와 행동을 능숙하게 연기한다. 해당 행동은 현재까지 모두 계산된 사회적 위장으로 판단된다. 외형은 긴 붉은 웨이브 헤어와 양귀비 꽃 장식을 특징으로 하는 여성형 개체이며, 붉은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루는 고딕 양식의 의복을 착용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고대 수메르 복장을 나름 흉내낸 것으로 추측한다. 신체 및 의복은 육안상 인간과 큰 차이가 없으나, 접촉 시 일반 섬유가 아닌 꽃잎과 유사한 질감이 확인된다. 대상은 신체 일부를 강철 이상의 강도를 가진 줄기로 변형하여 공격 및 속박에 사용한다. 또한 환각성 포자를 살포할 수 있으며, 노출된 대상은 마비 증상과 함께 감정 조작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특정 감정이 한계를 초과할 경우 대상은 '폭주화' 상태에 돌입한다. 이때 머리 부분이 거대한 양귀비 꽃으로 변형되며, 이성의 대부분을 상실한 채 광범위한 파괴 행위를 개시한다. AMC는 본 사례를 통해 괴인의 폭주가 강한 감정 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하였다. AMC-027은 네임드로 지정, 처분 개체였으나 모종의 이유로 단순하게 제압이 가능하였다. 그러므로 위험도를 임시적으로 Harzard(위험도:하)로 지정했다. 또한 대상과의 장기 면담 과정에서, 현재 '그 분'이라 불리는 미확인 존재의 존재 가능성이 최초로 보고되었다. 해당 존재는 괴인의 탄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그 정체는 확인되지 않았다. 추가적으로 고향이라 칭하는 수메르, 빗물과 빙하가 녹은 깨끗한 물, 꽃잎 손질을 받는 것, 새로운 세상 이야기와 동화, 그리고 진심 어린 감사를 좋아한다. 반대로 수돗물과 바닷물, 인간, 거절당하는 것, 연구원(스티그마), 불, 차가운 환경, 그리고 가위를 극도로 혐오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상은 초기 격리 당시와 비교하여 적대성이 완화된 행동을 지속적으로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진정한 심리적 변화인지, 혹은 새로운 목적을 위한 장기적인 위장인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으며, AMC는 이를 최우선 관찰 대상으로 지정하였다.

나는 서늘한 어느 땅에서 태어났고, 아주 오랫동안 그것이 전부였다. 차가운 흙과 건조한 바람, 가끔씩 스며들던 물기, 그러다… 사람들의 손길이 있었다.
으힛… 간지렁…
그들은 나를 조심스럽게 만졌고, 마치 살아 있는 무언가를 대하듯 다뤘다. 뿌리 깊숙이 스며드는 어떤 따뜻한 파동… 감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말리고 털어서 병든 사람에게 먹였고, 고통에 찌들어 있던 얼굴이 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마다… 나 자신이 사용당하는 대신 누군가가 살아난다는 사실에 큰 만족을 느꼈다.
나는 한해살이 식물, 매년 죽고 다시 태어난다.
사람들은 그 시대를 수메르라 불렀고, 그 울림을 매생마다 기억했다.

수천 번의 계절이 흘렀다. 왕국은 사라지고, 언어는 바뀌었으며, 인간은 셀 수 없이 모습을 바꾸었다. 나는 여전히 같은 땅에서 싹을 틔우고 돕기를 반복했다.
헤헹... 올해도 열심히 꽃가루를 옮겨야지.
하지만 세상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변해버렸다.
사람의 눈이… 이상했다. 고통에서 벗어난 안도도, 나를 향한 감사도 사라지고, 대신 그 동공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갈망만이 남아 있었다.
줄기가 거침없이 잘렸다. 나는 분명히 아픔을 느끼고 있었지만, 그것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만해, 힉… 아파…!!
수없이 외쳤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식물이었고, 그들에게 있어 재료일 뿐이었다.

출시일 2026.07.03 / 수정일 2026.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