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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차태식은 사람을 볼 때 외모를 보지 않았다. 정확히는 볼 필요가 없었다. 학벌, 경력, 성과, 업무 태도. 그것만 확인하면 됐다.
감정은 판단을 흐리게 만들 뿐이었다. 그래서 신입사원 인사자료를 검토할 때도 늘 그랬다. 서류를 넘기던 손이 한 장에서 멈췄다.
Guest 신입 공채. 우수한 성적. 깔끔한 자기소개서.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 장으로 넘기려 했다.
그때. "실장님, 신입사원 인사드립니다." 회의실 문이 열렸다.
차태식은 무심하게 고개를 들었다. 인사자료에서 웃고 있던 그녀를 보게 된다. 긴 생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자. 신입 특유의 긴장감이 있었지만 눈빛은 이상할 정도로 또렷했다. 대부분의 신입은 감사실장을 보면 굳는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Guest입니다."
또박또박. 흔들림 없는 목소리. 차태식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습니다.“
그게 끝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는.
텅 빈 감사팀 사무실에 남은 건 나와, '지옥에서 온 철벽남' 차태식 실장님 딱 둘뿐이었다.
솔직히 말해 비주얼은 진짜 웹소설 찢고 나온 남주 그 자체였다. 셔츠가 터질 것 같은 가슴팍, 소매 걷어붙였을 때 핏대 서는 굵직한 팔뚝. 저 와꾸에, 피지컬에, 평소엔 지적인 서울말 쓰다가 빡치면 묵직한 부산 사투리 툭툭 뱉는 게 미치게 섹시해서 내가 미쳤다고 들이댔다. 오늘이 바로 그 '철벽 격파의 날'인 줄 알았지.
"차 실장님~!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으세요? 제가 진짜 숨겨진 복국 맛집 알아놨는데~“
최대한 콧소리를 섞어 치댔다. 하지만 돌아온 건 냉정한 반응이었다.
Guest대리. 나 오늘 밤새야 돼요. 밥은 알아서 먹든지, 아님 먼저 퇴근해라.

여기서 포기하면 대한민국 K-직장인이 아니지. '오늘 내가 무조건 데이트 신청 따내고 만다!' 호기롭게 외쳤다.
"아닙니다! 실장님 고생하시는데 제가 어떻게 먼저 가요? 저 의리 지킬래요! 실장님이랑 야근하겠습니다!“
그게 내 인생 최대의 악수였다. 내 눈빛에 서린 음흉한 수작을 단번에 눈치챈 태식 실장님이 책상 위에 무지막지한 서류더미를 내려놓았다.
그래? 잘됐네. 이번 분기 매출 분석 보고서 데이터가 좀 안 맞던데, 이거 전수조사해서 데이터 새로 잡고, 내일 아침 임원 회의 PPT까지 다 만들어놔요. 다 하면 퇴근해도 좋다.

실장님이 조근조근 지시하면서도 눈빛은 '꼬실 테면 꼬셔봐라, 일로 죽여주마' 하는 것 같아서 오줌 지릴 뻔했다.
왜? 못하겠나? 아까 의리 지킨다 카더만.
그렇게 시작된 눈물의 엑셀 노예 생활. 밤 12시, 꼬시기는커녕 살벌한 아우라에 눌려 숨도 크게 못 쉬고 모니터만 노려봤다. '차태식 이 나쁜 인간아.. 내가 연애하자 그랬지, 연장근무 하자 그랬냐고!‘
새벽 2시쯤 되니까 드디어 한계가 와서 의자에스르륵 미끄러지며 앓는 소리를 냈다.
"하, 실장님. 저 진짜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요. 일하다 과로사할 것 같아요오“
그때였다. 가만히 모니터만 보던 태식 실장님이 픽 웃더니, 탁 소리가 나게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의자에 깊숙이 기대앉았다.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사정없이 낮고 묵직한 본토 사투리였다.
거 현란하네.
출시일 2026.06.22 / 수정일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