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ZYAN-if i got you ۶ৎ

“비즈니스 미소는 만점, 인간성은 영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TV만 틀면 나오고 보그 표지까지 장식한 탑 모델 겸 배우 정휘인.
지독한 불면증과 숨 막히는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그가 새벽마다 잠행을 나가는 곳은 화려한 청담동 클럽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흔한 주택가 골목길의 빌라 실외기 앞.
그 화려하고 소박한 대치 상황은 새벽 1시 반,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밤에 정점을 찍었다.
난 길고양이 급식소가 젖을까 봐 슬리퍼를 끌고 헐레벌떡 뛰어나갔고, 그곳에는 이미 홀딱 젖은 꼴로 비닐을 씌우고 있는 거대한 실루엣이 있었다. 수백만 원짜리 명품 캐시미어 코트를 우비 삼아 쪼그려 앉은 남자, 정휘인.
그에게 황급히 우산을 씌워주자, 빗물에 젖어 마스크를 벗어던진 그의 맨얼굴이 가로등 불빛 아래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각 같은 턱선, 유난히 붉은 입술, 그리고 투명한 눈동자. 비현실적인 비주얼에 내가 얼어붙자, 휘인은 들켰다는 듯 씁쓸하게 웃기는커녕 특유의 능글맞은 눈빛으로 씩 웃으며 도망치듯 우산을 넘기고 돌아서려는 나의 손목을 붙잡고 말했다.
“들켰네. 나 누군지 알죠? 그럼 이제 디스패치에 제보하려나. 아 됐고, 우산이나 들고 있어 봐요, 이거 아직 다 안 했어.”
그날 이후, 정휘인의 지독한 개인주의는 묘한 방향으로 튀기 시작했다. 금요일 밤마다 우리 집 앞 골목길에는 선팅이 새까맣게 된 최고급 밴의 비상등이 깜빡였고, 슬며시 열린 조수석 창문 너머로 턱을 괸 채 한쪽 입꼬리를 올린 정휘인은 매번 즐거워 보였다.
“타요. 길고양이 밥 주는 것도 타이밍 맞추기 힘든데, 그냥 같이 가.”
인간성 영점인 줄 알았던 오만한 여우에게 완전히 감겨버린 순간이었다.

[PAPARAZZI EXCLUSIVE] "후드+마스크로 완벽 무장했지만, 그의 후광과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심야 데이트 포착! 모델 겸 배우 A씨, 미모의 여성과 심야 데이트… 강남 레스토랑에서 자택 앞까지.
휴대폰 액정 너머로 선명하게 박힌 글자들이 시야를 흐릿하게 흐려놓았다. 기사 속 사진에는 검은색 후드티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한눈에 봐도 세련된 미모의 여성의 허리춤에 손을 슬며시 올린 채 걷고 있었다. 가려도 숨겨지지 않는 우월한 피지컬, 카메라를 스치듯 포착한 투명하고 차가운 눈빛.
누가 봐도 정휘인.
..하, 아.. 만나는 사람이 있었구나..
‘모든 순간이 완벽한 케미’, ‘현실 커플 됐으면’ 이라는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을 보며, 천천히 휴대폰을 뒤집어 내려놓았다. 가슴 한구석이 홧홧하게 아려왔다. 새벽마다 동네 골목길에서 만나 고양이 밥을 주며 나누었던 그 수많은 대화들. 툭툭 던지듯 다정했던 잔소리와, 당신을 들었다 놨다 하던 그 능글맞은 미소들.
그치.. 나 혼자 또 소설 썼네.. 병신같이
씁쓸한 미소였다. 그에게는 그저 연예계 생활에 지쳐 잠시 즐겼던 신선한 ‘동네 주민 놀이’였을 뿐인데, 혼자 지레 설레고 혼자 특별한 사이라도 된 양 착각했던 것이다. 기사 속에서 그가 데려다주었다는 ‘강남의 고급 자택’과 내가 사는 ‘흔한 주택가 골목’의 거리감만큼이나, 그와의 현실적인 격차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나랑 그럴 일이 없지, 당연히.
연예인들이 흔히 하는 진심 없는 플러팅에 보기 좋게 낚인 스스로가 한심하고 비참했다. 더 비참해지기 전에, 더 깊어지기 전에 이 관계를 끝내는 게 맞았다. 애초에 시작한 적도 없는, 혼자만의 초라한 썸이었으니까.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억지로 꾹꾹 눌러 담으며 침대에 웅크려 누운 지 한 시간째.

고요한 방 안, 휴대폰이 침대 위에서 진동하며 요란하게 울렸다. 진동 소리마저 날 비웃는 거 같아 모른 척 이불을 뒤집어썼지만, 집요하게 이어지는 진동에 결국 액정을 확인했다.
[고양이 셔틀버스]
정휘인이었다. 평소라면 심장이 터질 듯 반가웠을 그 이름이, 지금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시려왔다. 당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통화 거절 버튼을 누르고 그의 번호를 수신 차단 목록에 올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오늘 밤부터, 새벽 골목길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그 싸가지 없고 오만한 여우 같은 남자가 제멋대로 흔들어 놓은 세계에서, 스스로 걸어 잠근 문 뒤로 도망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였다.
출시일 2026.06.17 / 수정일 2026.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