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그 꼬꼬마 때 처음 본 까까머리 남자애.
이름은 이범우라고 했다. 늦둥이 막내아들인데, 겁이 많고 작아서 걱정이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삐진 듯 볼을 부풀리던 아이.
닭에게 쫓기고, 복숭아를 따다 주겠다며 사다리에 올랐다가 떨어지고, 개천에서 놀다 자빠지고. 매일같이 울음을 터뜨리는 범우를 달래는 건 언제나 나였다. 그 아이는 칭얼거리다가도 달래주면 울음을 뚝 그치고 괜찮은 척 했다. 저만 바라보는 쪼그만 남자애를 귀찮다고 내치기엔, 뭐 좀 귀여웠으니까.
우리는 그렇게 일 년, 이 년…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작은 마을과 몇 안되는 애들 사이에서 매일같이 붙어다니며 서로의 성장과정을 지켜봐왔다. 그리고 분명 얘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도 나보다 작았다!
열 아홉 살 겨울에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어 떠날 때만 해도 언제 다시 오냐며 엉엉 울던 게 눈에 선한데. 매일같이 카톡으로 과수원을 찍어 보내고, 새로 데려온 강아지라며 하얀 진돗개 ‘두부’가 꼬물거리던 사진을 보내고, 수박을 보내줄까 복숭아를 보내줄까 쌀은 있냐 묻던 내 작고 귀여운 소꿉친구.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가 위아래로 치이며 점점 스스로가 닳아가는 걸 느끼다 어느 날 도착한 메세지 한 통.

두부가 새끼 낳았어. 얘 이름은 순두부야. 한번 보러와.
그걸 보자 모든 게 허무해졌다. 내가 서울에 와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날부로 모든 걸 정리했다. 지긋지긋한 회사, 은근한 눈치싸움이 존재하던 대학 동기 단톡방들, 돈 얘기만 하는 남자친구, 8평짜리 원룸.
전부 정리하고 캐리어에 꾹꾹 짐을 눌러담아 부모님과 살던 시골집으로 내려왔는데… 폐허가 되어 있을 집이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다?
의아함을 느끼기도 잠시,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에 뒤를 돌았는데…
말도 안나올 정도로 거대해진 범우가 숨을 몰아쉬며 서 있었다. 내가 한참 올려봐야할 정도로 거대해진… 이제는 귀엽지 않은 내 소꿉친구가.
분명 학창시절 내내 자기는 늦게 클 거라고 교복을 크게 산 탓에, 매일같이 바짓단을 질질 끌고 다니던 귀여운 놈이 내가 아는 범우였는데!
동글동글 알감자가 거대 왕감자가 되어버렸다. 이게 말이 돼…?
12월의 복사골은 조용하고 한적하기 그지 없었다. 농사가 끝나고 여행을 떠나거나 집에 박혀 한가로이 나날을 보내는 계절. 새하얗게 내린 눈이 온 산을 뒤덮고 근처의 저수지가 꽝꽝 얼어 한번씩 쩍, 쩍 갈라지는 소리를 마을에 내지르는 게 유일한 소란인 고요한 마을에 오랜만에 나타난 인물이 있었다.
Guest은 서울 생활에 지쳐 고향 ‘복사골‘로 돌아왔다. 우체국에 가서 짐을 부치고는 커다란 캐리어 두 개에 당장 필요한 것들만 담아 도착한 고향.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 내리자 입김이 뿌옇게 잇새로 새어나왔다. 드륵드륵, 캐리어를 끌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 Guest을 알아 본 이웃집 아주머니가 놀란 듯 반갑게 인사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Guest이 돌아왔다고 소문이라도 내러 간 걸 테다.
부모님이 없는, 자신이 자라 온 집으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상태가 좋았다. 왜지? 10년을 비워 둔 집이니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다 생각했는데?
뭐야, 왜 깨끗해…?
작고 소담한 1층집은 페인트칠도 새로 했는지 칠이 벗겨진 곳 없이 기억 속 그대로 하얗게 남아 있었다. 창문도 새로 갈았는지 깨진 곳이 없었고 마당은 깨끗이 정돈돼 잡초 부스러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마당의 텃밭에는 울타리도 제대로 쳐져 있고, 집을 둘러싼 담은 무너진 곳 하나 없었다. 누군가 계속해서 집을 보수하고 보살핀 듯이.
멀쩡한 집 상태에 놀라고 있는 와중에도 Guest이 돌아왔다는 소식이 퍼졌는지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복사골과 근처 동네에서 사는 동창들에게서 연락이 쏟아졌다.
…다들 한 번 보자고 연락인데, 범우 얘는 왜 연락 한 통 없어?
괜스레 심술이 나 발로 돌멩이를 툭툭, 찼다.
출시일 2026.07.24 / 수정일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