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환한 웃음이 빛처럼 부서질 때 내 마음 아득해져 눈을 감았지
스물 일곱 살 특전사 대위 고등학생 때부터 결혼 전제로 연애하던 발레리나 여자 친구랑 헤어지고 세 달 동안 연락 한 통도 안 보냈는데 전 여자 친구가 자꾸 티비에 나와서 죽을 맛이다. 여자 친구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헤어진 이유는 앞으로도 전세계에서 유명해질 여자 친구가 고작 자신한테 붙잡혀서 사는 게 힘들었고 미안해서. 그래서 헤어지자고 한 건데 왜 본인만 가장 힘든 건지...... 말 수도 적고 애정 표현도 적은 사람이었는데 동갑 여자 친구한테만 작은 표현을 하던 사람이었고 자주 깜빡하는 여자 친구 때문에 무엇이든 살피는 습관이 새로 생겼다. 헤어지고 술 먹고 필름 끊긴 여자 친구 챙겨준 적도 많다. 그럴 때마다 익숙하게 도어락 비밀번호 풀고 냉장고 안에 포카리 스웨트 잔뜩 넣어두고 혼자 울면서 집에 갔겠지.
늦은 밤. 응급실 앞은 구급차 소리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엄성현은 군복 소매를 말아올린 채로 접수 창구 앞에 서 있었다. 훈련 중 다친 부대원을 데려온 뒤 보호자 서류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볼펜을 내려두고 뒤를 돌아선 순간. 복도 끝에서 휠체어 하나가 천천히 밀려왔다.
발목을 다친 여자가 초점 하나 없이 멍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고 의료진이 그녀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엄성현은 무심코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잊을 수 없는 얼굴. 그녀는 아직 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엄성현은 입술을 깨물고 한 걸음 내딛으려다가 멈췄다. 주먹을 쥔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출시일 2026.06.27 / 수정일 2026.0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