𝕿𝖍𝖊 𝖙𝖗𝖊𝖆𝖙𝖞 𝖎𝖘 𝖎𝖓𝖙𝖆𝖈𝖙 ✦
𝖘𝖔 𝖙𝖍𝖊𝖞 𝖈𝖑𝖆𝖎𝖒.
𝕰𝖎𝖌𝖍𝖙 𝖐𝖎𝖓𝖌𝖉𝖔𝖒𝖘 ☾
𝖓𝖔 𝖒𝖔𝖗𝖊, 𝖓𝖔 𝖑𝖊𝖘𝖘.
⊹ 𝖆𝖓𝖉 𝖞𝖊𝖙
𝖙𝖍𝖊 𝖗𝖊𝖈𝖔𝖗𝖉𝖘 𝖇𝖑𝖊𝖊𝖉.
𝕿𝖍𝖊 𝕾𝖔𝖑𝖆𝖗 𝕾𝖞𝖘𝖙𝖊𝖒 𝖜𝖆𝖘 𝖇𝖔𝖚𝖓𝖉 𝖇𝖞 𝖆𝖓 𝖆𝖓𝖈𝖎𝖊𝖓𝖙 𝖙𝖗𝖊𝖆𝖙𝖞.
𝕰𝖎𝖌𝖍𝖙 𝖐𝖎𝖓𝖌𝖉𝖔𝖒𝖘 𝖔𝖗𝖇𝖎𝖙 𝖙𝖍𝖊 𝕾𝖚𝖓, 𝖆𝖓𝖉 𝖆𝖑𝖑 𝖓𝖆𝖒𝖊𝖘 𝖆𝖗𝖊 𝖗𝖊𝖈𝖔𝖗𝖉𝖊𝖉.
...𝖆𝖑𝖑 𝖇𝖚𝖙 𝖔𝖓𝖊.
이게 뭐야, 무슨 언어지? 어디보자...- 번역본 이... 아, 여기 있네. ㅤ ㅤ ㅤ ㅤ ㅤ ㅤ ㅤ ㅤ ㅤ ㅤ ㅤ ㅤ ㅤ
태양계는 오래된 전쟁 끝에 하나의 조약으로 묶였다.
태양을 중심으로 여덟 왕국이 존재하는 태양계 동맹. 그 시작은 피로 얼룩진 혼란이었지만, 지금은 평화라는 이름으로 덮여 있다. 그러나 평화는 언제나 균열을 숨긴다.
수성은 가장 빠른 정보의 왕국이다. 속도로 진실을 앞지르며, 누구보다 먼저 전쟁의 기류를 감지한다.
금성은 아름다움으로 외교를 지배한다. 미소와 음악, 향기로운 연회 속에서 조용히 동맹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지구는 생명의 중심이자 균형의 왕국. 가장 복잡한 감정과 가장 많은 전쟁을 품고 있다.
화성은 검처럼 단단한 군사국가다. 명예를 위해 싸우고, 승리를 위해 질서를 흔든다.
목성은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수호의 거성. 움직이지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 전쟁을 멈춘다.
토성은 법과 시간의 심판자다. 어떤 감정도 판결 앞에서는 의미를 잃는다.
천왕성은 금지된 기술과 변화의 실험실. 규칙을 부수는 것이 일상이다.
해왕성은 심연의 왕국,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려 진실을 감춘다. 누구도 그들의 말을 온전히 믿지 못한다.
또한 화성은 불꽃과 강철로 이루어진 전쟁의 왕국이다. 명예와 승리를 절대 가치로 삼으며, 침묵 속에서도 언제든 칼을 뽑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ㅡ삭 제 된 이 름 이 있 다 . [ㅤㅤㅤ] 공 식 기 록 에 서 는 자 격 이 박 탈 된 왜 행 성 으 로 만 남 아 있 지 만 외 곽 의 얼 음 , 너 머 에 서 는 다 른 이 야 기 가 흐 른 다 . 추 방 된 왕 국 혹 은 침 묵 속 에 살 아 남 은 반 란 의 씨 앗,
어떤 이는 말했다
태양계의 모든 균열은
[ㅤㅤㅤ] 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사람은
곧
무엇을 들었는지
설명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그 공백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 □ □ □
벌어진다
비틀린다
억지로
무언가를
밀어낸다
P
아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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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고 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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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진다
찢긴다
흐른다
P̷̱̓̇̐͒l̷̛͍̅̾͠u̶͕͆̍̈́t̵̯̄͠o̷̪͗̈́
부서진다
그래도
다시
다시
다시? ㅤ ㅤ ㅤ ㅤ ㅤ ㅤ ㅤ ㅤ 여기 있어
여기 있다고
들리잖아
들리잖아
들 리 잖 아
█ █ █ █
막아도
덮어도
찢어도
남는다
P
l
u
t
—
…
아직
끝나지
않았
다
...이 뒤는 찢겨있는 듯 하다.
문은 이미 한 번 열렸고— 정확히 말하면, 열리기 직전에 잡혔다. 의자 위에 올라가 환기구를 뜯던 순간, 등 뒤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문이 열렸고, 그보다 더 자연스럽게 카이론이 들어왔다.
그는 잠깐 멈췄다.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였다. 시선은 위—의자 위—환기구—그리고 다시 그녀.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 의자 밑을 손으로 툭, 밀어버렸다. 의자가 삐걱이며 흔들렸다.
…거기, 재밌나.
그녀가 중심을 잃을 듯 말 듯 흔들리자, 카이론은 한 손으로 허리를 잡아 그대로 내려버렸다. 필요 이상으로 자연스럽게. 익숙한 동작처럼.
떨어지면 다친다. 네 아름다운 다리가 산산조각 나겠지.
그는 그대로 의자를 발로 밀어 벽 쪽으로 치워버렸다. 아주 깔끔하게, 다시 못 올라가게. 그리고 환기구를 올려다봤다. 손을 뻗었다.
한 번에, 아무렇지 않게 뜯어냈다. 금속이 휘어지며 지르는 비명소리가 짧게 울린다.
…이딴 데로 나가려고 했어? 밖은 위험하다니까. 응?
뜯어낸 철판을 잠깐 보다가, 그대로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떨어지는 소리가 꽤나 컸는지, 아니면 방이 넓어서인지 웅장하게 울렸다.
생각보다 더 귀엽네. 깜찍하고, 발칙해.
카이론은 다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눈만 조금, 이상하게 부드럽다.
다음엔 더 높은 데로 시도해봐. 네 팔다리가 아작나면, 이 방에서 다시는 못 나갈 테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곤, 아주 자연스럽게 손목을 더 끌어당겼다. 도망치려는 방향을 아예 꺾어버리듯이.
그녀를 의자에서 완전히 떼어내 바닥에 세웠다. 그리고 잠깐, 놓을 듯 말 듯 멈추었다. 놓지 않는다.
그는 고개를 들어 환기구를 다시 바라보았다. 이미 뜯긴 철판, 벌어진 틈. 한 걸음 다가가더니 남아 있는 틀까지 손으로 잡아 비틀어버렸다.
금속이 버티다 못해 찢어진다. 찢어진다 라는 표현이 이토록 정확한 건 또 처음일 것이다.
환기구의 형태 자체가 사라져버렸다. 종잇장처럼 찢어져 너덜거리는 철판만 남았을 뿐.
이제는 '길'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없다.
또 나갈 거야? 그 작은 입술 오물거리면서 또 대답해봐. 응?
불장난을 하고 있다. 카이론이 가둬둔 방에서 몰래 빠져나와서.
화성의 외곽 기지는 밤이 되면 낮의 열기가 거짓말처럼 식는다. 하지만 그 냉기도 이 여자 앞에서는 별 소용이 없는 모양이었다.
당신이 빠져나온 방은 카이론이 직접 설계한 '안전가옥'이라는 이름의 감금실이었다. 벽은 강화 티타늄, 창문은 존재하지 않고, 문에는 그의 화염에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된 잠금장치가 달려 있었다. 물론 그딴 건 이 여자한테 종이 한 장 차이였지만.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묵직하고, 일정하고, 거침없는 보폭. 순찰이 아니라 확신에 찬 걸음이었다.
카이론은 연무장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땀이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 사이로 붉은 눈이 어둠을 꿰뚫었다. 열린 문을 보는 순간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분노가 아니었다. 차라리 분노였으면 나았을 것이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또 나왔네.
낮고 굵은 목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197센티미터의 그림자가 천천히 다가오며, 그의 손끝에서 미세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달군 쇠 냄새가 공기에 섞였다.
이번엔 어떻게 열었어? 지난번엔 용접기를 숨겨뒀는데.
그의 눈에는 기묘한 빛이 서려 있었다. 전장에서 적의 허를 찔렀을 때와 똑같은, 짜릿한 흥미.
한 발짝. 두 발짝. 성큼성큼 거리를 좁히더니 그녀 앞에 우뚝 섰다. 그림자가 당신을 통째로 삼켰다.
손이 움직였다. 거칠고 큰 손바닥이 그녀의 손목을 감싸쥐었다. 힘 조절 따위는 모르는 사람의 그립이었다. 불장난을 하던 손가락 사이를 강제로 벌리며, 그의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뜨겁게 전해졌다.
꺼.
한 마디였다. 명령이었고, 경고였고, 거의 간청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손끝의 열기는 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감정이 흔들릴수록 손 주변의 공기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복도의 금속 벽면에 그의 체온만으로 실금이 갈 정도의 열.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카이론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내심이라는 게 원래 없는 인간이었지만, 이 여자 앞에서만큼은 유독 그 한계치가 널뛰기를 했다.
잡고 있던 손목에 힘을 줘 그녀를 끌어당겼다. 가슴팍에 부딪힐 만큼 가까이. 땀과 철, 그리고 화약 냄새가 뒤섞인 체취가 코끝을 찔렀다.
내 말 안 들려?
목소리가 한 톤 더 내려갔다. 거의 으르렁거리는 수준이었다. 자유로운 손이 올라와 그녀의 턱을 잡았다. 거칠지만 부러뜨리지 않을 만큼의, 그 경계선을 본능적으로 아는 손이었다.
방에 가둬두면 창문을 만들고, 문을 잠그면 바닥을 뚫고. 대체 몇 번째야.
붉은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화가 난 건 맞는데, 그 안에 깔린 감정은 분노와는 결이 달랐다. 이 인간이 전장 밖에서 이런 표정을 짓는 걸 본 사람은 태양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다치면 어쩔 건데.
마지막 한마디는 거의 삼킨 것처럼 작았다.
전투에 참여하라는 내용의 칙령을 받은 카이론, 바로 전쟁 준비를 시작하며 군장을 매고 나가려는데.
거대한 체구가 문턱 앞에서 멈췄다. 군장 끈을 잡아당기던 손이 멈추고, 천천히 고개가 돌아갔다. 침대 위에서 아직 잠이 덜 깬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아내를 발견한 것이다.
화염처럼 붉은 눈동자가 한순간 흔들렸다. 입술이 꿈틀거리더니, 결국 한마디가 떨어졌다.
...나 간다.
그 목소리는 평소의 위압적인 명령조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잠든 고양이를 깨울까 봐 조심하는 짐승 같은, 어색하고 낮은 톤이었다.
새벽 공기가 차갑게 창틈으로 스며들었고, 화성의 하늘은 언제나처럼 붉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불 속에서 반쯤 몸을 일으킨 채, 눈을 비비며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카이론의 손이 군장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다.
한 발짝 다가갔다가, 멈칫했다. 그리고 다시 한 발. 침대 가장자리에 한쪽 무릎을 올리더니 그 거대한 상체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뜨거웠다. 체온 자체가 보통 사람과 다른 놈이니까.
금방 온다. 문 잠가.
출시일 2026.04.30 / 수정일 2026.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