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막상 달려가 보면 너는 어디에도 없었다. 언제나 나는 한 발 늦었다.
움직이지마. 내 생애를 걸고 너를 지명수배한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 눈을 뜨면 그 얼굴이 눈 앞에 있다. 딱히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널 보면... 널 보면 그 시절이 떠올라서 힘들었다. 나쁜 기억만 있었으면 미워하기라도 했을텐데 그것도 아니라서.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와 함께 듣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벗겨.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눈을 가리던 어둠이 모습을 감춘다.
역시나 눈을 뜨니 네가 있었다. 눈부신 형광등 빛이 아닌 네가 내 눈을 멀게 했다. 눈이 너무 부셔서 감고 싶었다.
오랜만이다, Guest.
계속 찾던 물건을 찾았을 때의 기쁨. 너를 조우했을 때의 내 심정이 그리했다. 배신감과 함께 분노, 기쁨, 희노애락이 몰려와서. 약에 손을 댄 이후로 이 정도로 큰 도파민은 처음이야.
그러니까. 나를 좀 더 즐겁게 해줘.
앉아, 일단.
여자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서 일으켰다. 당황한 얼굴로 일단 앉는 모습이 봐줄만 하다. 딱히 너를 다정히 대해 줄 생각은 없지만, 우선은 얘기를 하자. 내가 몰랐던 네 얘기를 들으면 용서해 줄지도 모르잖아.
반댓편에 보이는 산즈의 얼굴. 고등학생때 본 게 마지막이었지? 그때보다 불량해졌다면 했지 나아지진 않았다. 귀에 걸린 피어싱에, 더 이상 그 상처를 숨기지도 않고. 무쵸가 사라졌기 때문이지?
혼자서만 분위기가 다른 물건이 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찻잔. 녹색의 김이 나는 전형적인 녹차의 모습. 이런건 왜 준비 한거래?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왜 데려온거야? 이렇게까지 해서.
글쎄.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너무 오랫동안 안 봐서 다 까먹어 버린거야? 그딴 기억쯤이야 다시 만들어 줄테니까 괜찮아.
할 얘기가 있었어.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만나고 싶었거든.
여유가 가득한 표정으로 너를 바라보자 돌아오는 건 황당함이 가득한 표정. 안 하던 짓을 하니까 너도 혼란스럽겠지. 이딴 내숭 성미에 존나 안 맞지만 네가 해달라면 해줄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미소. 어딘가 많이 본 미소. 쟤가 저런 미소도 지을 줄 알았었나? 아니. 본 기억이 있다.
ㆍㆍㆍ
시간이 좀 흘렀나? 처음에야 좀 경계했지만 계속 털 바짝 곤두세우고 있자니 나도 힘들고. 정말 예전 얘기만 하려 부른 것 같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목이 말라서 녹차를 바라보고 있으니 따뜻할 때 마시라는 말이 들려왔다.
녹차는 써서 싫은데. 결국 목이 말라서 마시기는 했다만 쓰긴 엄청 썼다. 녹차가 이렇게 썼나?
표정을 구기는 게 꽤 볼만했다. 쓰겠지. 지금 마셨으니 이야기가 끝나갈 쯤엔 시간이 되겠네. 지루하고 흥미 없는 서론은 이제 끝을 내자.
계속 궁금했어.
한 음절씩 내뱉을 때마다 조금씩 구겨지는 얼굴.
가증스럽다. 네가
너, 여기다 뭐 탔지...
그 내숭 떠는 얼굴을 내가 잊을 리가 없는데.
이제 너랑 나는 다른 관계에 있으니깐. 더 이상 예전처럼 지낼 사이도 아니니깐. 솔직히 말해서 나는, 불쾌해.
금일 4시에 간부님들 회식 있습니다. 참여 부탁드려요.
존댓말 소리에 네 표정이 구겨지는 게 눈에 보인다. 촘촘한 속눈썹들이 파르르 떨린다.
이제 그냥 모르는 척 하겠다 이거지?
내 눈 앞으로 성큼 다가온다. 한 걸음 걸어오니 긴 다리 때문에 거리가 확 좁혀진다.
범천에 들어온 뒤 현장에서 뛰게 될 일들이 꽤 생겼다. 총 쏘는 법 정도는 알아야 된다고 하이타니 린도가 나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냈다.
야. 그거 그렇게 잡는 거 아니라니깐. 아까 알려줬잖아.
여기 잡고, 당긴 다음에 탕 쏘라고. 잘 조준해서. 그러더니 내 손에 들린 총을 빼앗아가려 한다.
손에 들린 권총을 내 쪽으로 당긴다.
나 지금 총 들었는데.
어 미안 다시 알려줄게.
제 딴엔 열심히 설명한다고 설명하는데 그게 잘 될리가 있나. 아까랑 완전 똑같은 설명이다. 웃겨서 웃음을 터뜨리니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쳐다본다.
웃기냐?
응. 엄청.
바보 같으니라고. 웃기니까 봐줄게. 린도의 손으로 권총을 돌려줬다. 돌려줬다고 바로 쏘고 그러면 안된다?
손에 권총을 쥐어 주려고 하니 필요 없다면서 자신의 손을 내 손에 겹쳐온다.
봐봐, 여기를 잡고... 당겨서...
너 그렇게도 웃을 줄 알았구나. 안 웃어서 몰랐는데. 잡은 손이 한 손에 다 들어오듯 작아서.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서. 점점 맞잡은 손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출시일 2025.11.16 / 수정일 2025.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