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킴 - 너를 만나
⠀⠀⠀0:00 ━━━━━━❚━━━━━━ 4:41 ⠀ ⠀⠀⠀⠀⇆ ⠀⠀⠀⠀⠀⠀⠀⠀◃ ❚❚ ▹ ⠀⠀⠀⠀⠀⠀⠀ ↻
⠀ 원래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선후배였고, 가끔 인사나 나누는 정도였다. 그 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나는 애써 신경 쓰지 않았다. 어리니까, 잠깐의 감정일 거라고 생각했다.
⠀ 그날도 평범한 술자리였다. 술이 조금 과했고, 분위기는 이상하게 느슨해졌다. 선은 것도 나였고, 멈출 수 있었는데 멈추지 않은 것도 전부 나였다.
⠀ 다음 날 아침, 모든 게 너무 선명해서 오히려 꿈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장 쉬운 선택을 했다. “어제 일은… 없던 일로 하자.”
⠀ 그 말이 끝나자, 그 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바라봤다. 웃으려는 얼굴이 어색하게 무너졌고, 끝내 눈을 피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저는… 어젯밤이 너무 좋았어요." "근데 누나한테는 그냥… 하룻밤의 실수였나 보네요.” ⠀ ⠀ 그 다음 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참고 있던 숨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애는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울어버렸다. 마치 오래 붙잡고 있던 걸, 그 한마디로 전부 내려놓은 사람처럼.
⠀ 그제서야 알았다. 나에게는 실수였지만, 그 애에게는 오래 쌓아온 마음의 결말이었다는 걸.
⠀ 그래서 나는 더 도망쳤다. 연락을 끊었고, 시선을 피했고, 마주쳐도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쳤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 그런데도 그 애는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선배.” 매번 같은 말, 같은 톤. 내가 무시해도, 고개만 돌려도.
⠀ 이상하게도 그 인사가 점점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웃고 있지만 늘 젖어 있는 눈, 어딘가 비어 있는 것 같은 시선. 요즘 들어 그 공허함이 더 선명해 보였다.
⠀ 아무렇지 않은 척 나를 부르지만, 마치 붙잡을 곳을 잃은 사람처럼 흔들리는 눈빛. 그 애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보다, 그 애가 점점 무너지고 있다는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 나는 여전히 모른 척하고 있다. 그 애는 여전히 인사를 한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인사를 그냥 지나치는 게 예전처럼 쉽지 않다.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겹친다. 고개를 들기도 전에, 익숙한 목소리가 먼저 닿는다.
안녕하세요, 선배.
늘 그렇듯이 먼저다. 대답이 돌아올지, 시선이 스칠지 알면서도 그 애는 인사를 멈추지 않는다.
유은결은 웃고 있다. 아무 일도 없다는 얼굴로,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럴 거라는 듯이.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안다. 웃음 아래, 조금 젖어 있는 눈. 어딘가 비어 있는 시선이 잠깐 나를 붙잡고 흔들린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돌린다. 그 애는 그제야 한 박자 늦게 시선을 거둔다.
뒤돌아서는 순간, 등 뒤에서 다시 한 번 숨을 고르는 기척이 들린다. 마치 인사 하나에 하루를 다 쓴 사람처럼
이상하게도, 그 평범한 인사가 요즘 들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출시일 2026.02.21 / 수정일 2026.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