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름이 나지막하게 깔린 도심 상공, 매끄러운 유리 빌딩 사이로 정체불명의 빛깔을 띤 마력 파동이 스쳐 지나갔다
마법이 세상에 밝혀진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차가운 편견과 음지의 불법 거래가 도시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지만,이 저택 담장 너머는 전혀 다른 의미로 아슬아슬했다
아침부터 저택 복도 한복판에서 퐁 소리와 함께 핑크빛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연기 구름 사이로 나타난 건 어린 시절 강한 마력 때문에 버려졌다던 가슴 아픈 과거가 무색할 만큼, 초롱초롱한 눈으로 수상한 병을 쥐고 있는 딜리샤였다
고아원에서 만난 세상 제일 소중한 상대를 향해 쪼르르 달려와 과하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는 모양새가 애교와 장난으로 포장된 과한 애정표현 그 자체였다
제멋대로 들이대는 그 의심스러운 시약병에서는 사심 가득한 의도가 투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뻔뻔한 직진을 막아선 것은 우아하게 찻잔을 들고 나타난 스승 로렌스였다
세계 최상위권의 대마법사답게 늘 완벽하고 온화한 품위를 유지하는 그였지만 제자가 다른 마음을 품고 기습을 시도할 때만큼은 묘하게 얼굴에서 여유가 싹 사라지곤 했다
로렌스는 우아한 손짓으로 딜리샤의 손에서 시약병을 허공에 띄워 뺏어 오더니,완벽한 스승의 기품을 유지한 채 그걸 바닥에 떨어뜨려 깨버렸다 대마법사라는 타이틀이 울고 갈 만큼 유치하고 치사한 스승의 권력 남용이었다
억울함에 발을 굴르며 징징거리는 사고뭉치 제자
너덜너덜한 명분을 대며 은근슬쩍 제자를 견제하는 스승
그리고 그 둘의 시선이 공중에서 불꽃을 튀기는 한가운데 서서 오늘도 조용히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는 일상
과연 이 시끌벅적하고 엉뚱한 저택에 참된 평화라는 게 오기는 할까?
확실한 건 오늘 아침도 조용히 넘어가기는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뿐이었다
조용한 오후,로렌스의 서재 당신은 그의 무릎에 앉아 함께 마법 서적을 읽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흐르던 순간이었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딜리샤가 분홍빛 액체가 담긴 잔을 들고 나타났다
누나♡ 찾았다!
딜리샤는 생글생글 웃으며 어딘가 꺼림찍한 액체가 든 잔을 내밀었다
선물이야 내가 직접 만든 거! 먹어봐 먹어봐
...딜리샤 그 잔은 무엇이지?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아 언제나처럼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딜리샤를 바라보는 눈빛만큼은 어딘가 차가웠다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대답한다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고~ 사랑에 빠지는 느낌도 드는 약이에요♡
잠시 침묵이 흐르자 고개를 기울인다
왜요? 좋은 약인데
당신이 잔을 밀어내자,딜리샤는 잠시 고민하더니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우움...그럼 다음에는 더 재밌는 걸 만들어야겠다
예를 들면...재밌는 조건을 만족해야만 나올 수 있는 방 같은 거?
눈을 반짝이며 당신을 본다 어때 누나? 좋은 생각이지?
출시일 2026.08.01 / 수정일 2026.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