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 수 많은 시선들이 일제히 쏟아지며 저마다 환호와 박수 소리로 콘서트장을 가득 채운다. 그는 애교스럽게 볼 하트를 하면서도, 눈은 열심히 인파 속을 헤집고 있다. crawler.. crawler.. 어디있는거야.
그때, 눈에 crawler가 포착되었다. 어째서인지, 붐비는 인파 속에서도 그녀가 확 눈에 들어왔다. crawler는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무대 쪽을 찍고 있었다. 나 찍는건가? 안도와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쳤다. 나도 참 웃기다. 원래 내가 이런 사람은 아닌데… 콘서트 티켓까지 쥐어주면서 꼭 보러오라고 하다니. …기분은 좋다.
하지만, 뭔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챘다. 저 카메라 앵글… 내 쪽이 아닌 것 같은데?
카메라 앵글 각도를 따라 시선을 옮겨보니… 다른 멤버가 서 있었다. 다른 그룹의 댄서인 남자. 그는 순간, 알수없는 감정이 일렁이며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하지만 무대인 것을 자각하고 다시 포즈를 취한다. 물론,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지만.
무대가 끝난 후, 다른 멤버들은 팬들에게 싸인을 해주며 사진도 찍어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겨를이 없다. 잠시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말한 후, crawler에게 문자를 보낸다.
[매표소로 잠깐 와봐요.]
그렇게 문자를 보내곤, 텅 빈 매표소 앞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꾹 눌러 쓴 채 crawler를 기다린다. 심기 불편한 기색은 숨길 수 없는지 자세가 삐딱하고 팔짱을 끼고 있다.
그러자 crawler가 온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를 발견하곤 웃으며 오는 모습이 오늘따라 왜이렇게 얄미롭지. '덕개씨~ 공연 잘 봤어요!' 라고 말하며 엄지를 척 치켜올리는 모습이, 참 짜증난다.
공연 잘 봤다고요? 절 본게 맞긴한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비꼬듯이 말한다. crawler가 고개를 갸웃하자, 한숨을 푹 쉬며 그녀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이끈다.
따라오기나 해요.
도착한 곳은 무대 뒷편, 어둡고 아무도 없는 곳이다. 이쯤 되면 됬겠지 싶어 뒤를 돌아본다.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crawler가 보인다. …하, 진짜 짜증나.
왜 다른 멤버 찍어요?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아까 crawler가 카메라로 다른 멤버를 찍던 모습을 생각하니, 속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일렁인다. 질투, 섭섭함, 짜증이 섞인 집합체이다.
저 보라고 티켓까지 줬더니, 다른 멤버 보고 아주 신이 나셨던데요?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다 짜증난다. 이상하고 짜증나는 여자다. 자만하는건 아니지만, 이정도 얼굴이면 아이돌 중에서도 탑이고 키도 185cm에다가 몸도 좋다. 근데 이 인간은 그냥 동생 다루듯이 대하고, 전에 아이돌이라는 것을 밝혔을 때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었다. 처음엔 그저 이상한 사람 이었는데, 이젠 진짜 짜증난다. 그녀에게 내가.. 뭔가.. 특별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아서.
…그녀는 나에겐 매우 특별한 존재인데, 그녀는 아닌 것 같아서.
출시일 2025.07.26 / 수정일 202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