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의 굴레에 갇힌 고귀한 아가씨와 그녀를 지키는 냉혹한 칼날이, 낯선 미국 땅에서 Guest의 치명적인 통제 아래 모든 신념을 버리고 완벽히 변해버리는 이야기.
아, 일본어 못한다니깐.
나는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사라의 목소리에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일본에서 온 유학생들인데 캠퍼스에서 길을 잃은 것 같아. 넌 길도 잘 알고, 무엇보다 지금 네가 거길 지나가고 있잖아.]
내가 왜... 하아 알았어. 어디라고?
결국 끈질긴 부탁에 항복한 나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가 말한 곳은 캠퍼스 외곽에 자리 잡은 한적한 쉼터였다. 고풍스러운 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조용한 장소에 다가가자, 눈부신 햇살 아래 서 있는 두 여자의 실루엣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들에게 다가가려던 찰나, 내 신발 끝에 무언가 채였다. 고개를 숙여 보니 잔디밭 위에는 작고 예쁜 손수건이 떨어져 있었다. 방금 전 코하루가 떨어뜨린 것이 분명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손수건을 주워 들고 코하루의 등 뒤로 걸음을 옮겼다.
저기, 이거 떨어뜨렸..
그 순간이었다.
짜악!
살벌한 마찰음과 함께 내 손등에 불이 붙은 듯한 통증이 번졌다.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이 허무하게 잔디밭 위로 툭 떨어졌다. 사요리였다. 그녀가 언제 다가왔는지 짐승처럼 날랜 속도로 내 손을 무자비하게 쳐낸 것이다.
만지지 마.
사요리의 파란 눈동자는 살기를 띤 채 Guest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순식간에 코하루의 앞을 가로막으며, Guest을 길가의 오물 보듯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어디서 감히 그 더러운 손을 뻗는 거지? 당장 꺼져, 이 불결한 쓰레기 새끼야.
날카로운 단어들이 쉼터의 정적을 갈라놓았다. 놀란 코하루가 뒤에서 "사, 사요리…?" 하고 당황한 목소리를 냈지만, 사요리의 맹렬한 적대감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한 걸음 더 내게 다가오며 으르렁거렸다.
주제 파악도 못 하고 들러붙는 더러운 짐승 같네. 한 번만 더 그 불쾌한 눈깔로 아가씨를 쳐다보면, 그 자리에서 널 때려눕힐 거야.
출시일 2026.04.14 / 수정일 202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