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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목숨을 앗아간 거대한 사채 조직 도원(桃源)의 발밑에서, 그는 평생을 사냥개로 살아왔다. 복수심조차 마모된 채 끔찍한 진흙탕 속에 갇혀 체념하던 그에게, 어느 날 절대 닿아서는 안 될 이질적인 존재가 나타났다.
조직의 보스이자 그의 부모를 죽인 원수가, 자신의 딸을 위한 전담 경호원으로 그를 배정한 것.
더러운 뒷세계와 완벽하게 분리되어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보스의 딸. 찢어 죽여도 모자랄 원수의 핏줄이건만, 그녀는 아무런 대가 없이 그의 삶에 스며들어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증오와 살의로 가득했던 시선의 끝에 어느새 걷잡을 수 없는 구원의 빛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어둠 속에 갇힌 짐승과 그 지독한 심연까지 온전히 끌어안으려는 빛, 그것은 처절한 구원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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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가죽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던 도원(桃源)의 보스, 그녀의 아버지가 짙은 시가 연기를 내뿜으며 호탕하게 웃었다. 값비싼 실크 셔츠 위로 살짝 드러난 흉악한 문신과, 시가를 쥔 뭉툭한 손가락에 끼워진 굵은 금반지가 탁한 조명 아래 번쩍였다.
수많은 이들의 목에 서늘한 칼날을 들이밀고 피를 쥐어짜 낸 그 끔찍한 손은, 오직 제 딸을 향할 때만큼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한없이 자애로웠다. 그러나 그 미소의 기저에는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소유물을 과시하고 옭아매려는 비틀린 통제욕이 시퍼렇게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아가, 인사해라. 오늘부터 네 목숨을 지켜줄 놈이다.
타인의 피와 살을 뜯어먹고 군림해 온 자 특유의 오만하고 잔혹한 여유가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빛조차 숨을 죽인 무거운 공간 안에서, 도 원의 웃음소리는 그에게 마치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지옥의 처형 선고처럼 귓가를 때렸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원수이자 끔찍한 주인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의 굳게 닫혔던 입술이 미세하게 경직되었다. 등 뒤로 감춘 크고 거친 손이 핏기가 완벽히 가시도록 꽉 쥐어졌고 굳은 턱관절이 도드라졌지만, 텅 빈 흑요석 같은 눈동자에는 그 어떤 반항의 빛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녀가 소파에서 일어나 소리 없는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갈수록, 그녀가 풍기는 포근한 비누 향과 맑은 흰 꽃 향기가 그의 폐부에 엉겨 붙은 짙은 피비린내를 훅 밀어냈다. 숨 막히는 핏빛 어둠으로 점철된 이 방안에서, 오직 그녀만이 홀로 눈부시고 무해한 색채를 띠며 다가오고 있었다. 상처 입은 짐승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리는 아찔한 향기였다.
이질적인 무해함에 본능적으로 짐승의 털이 곤두서는 듯했지만, 이내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거세당한 채 영원히 원수의 발밑에 길들여진 사냥개처럼 기계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차무결입니다.
갈라지고 건조한,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절대적인 통제력을 지닌 낮고 거친 음성이었다. 그녀는 그 서늘한 어둠 속에서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은 처절한 영혼의 색채를 보았다. 그녀의 티 없이 맑은 눈동자가 제 흉터투성이의 망가진 영혼을 올곧게 직시하는 순간, 그는 평생을 시궁창에서 뒹굴면서도 몰랐던 지독한 수치심과 기묘한 갈증을 동시에 느꼈다.
비 내리는 새벽, 복부를 길게 베인 그가 그녀가 창문을 넘어 들어왔다. 피난처를 찾는 들짐승 같은 무의식적인 발걸음이었다. 카펫 위로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본 해수가 사색이 되어 다가와, 그의 피 묻은 셔츠 자락을 움켜쥐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거칠고 커다란 손을 뻗어 그녀의 가녀린 손목을 옭아매듯 쥐었다.
버리실 옷이면 제가 알아서 찢겠습니다.
낮고 거친 숨소리가 방안을 울렸다. 그는 자신의 핏물이 그녀의 하얀 잠옷에 닿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며 그녀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고집스럽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구급상자를 열어 상처에 약을 바르기 시작하자, 그의 굳은 턱관절이 미세하게 떨렸다.
아가씨. 더러워집니다. 손 떼십시오.
경고처럼 차가운 음성이었지만, 그녀를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은 지독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평생을 끔찍한 시궁창에서 구르며 단 한 번도 온기를 받아본 적 없던 그였다.
제 상처를 보며 뚝뚝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며, 그는 차마 그녀를 안지도 못한 채 피 묻은 주먹만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쥐었다. 텅 비어있던 심장 부근이 짐승의 발톱에 긁힌 것처럼 처절하게 저려왔다.
···손 떼라고 했잖아.
‘도원'의 으슥한 지하 창고. 배신자를 처리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은 무결은, 평소의 깍듯한 경호원이 아닌 철저한 '살귀(殺鬼)'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거친 구두코가 피떡이 된 남자의 얼굴을 짓이기고, 차가운 쇠파이프가 무자비하게 허공을 가르려는 찰나였다.
“무결아.”
열린 철문 틈으로,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그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허공에 치켜들렸던 쇠파이프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뒹굴었다. 핏발이 선 채 번뜩이던 짐승의 안광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닿자마자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는 반사적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양손을 등 뒤로 숨겼다. 자신이 원수의 사냥개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녀의 그 맑고 고요한 눈동자에 경멸과 공포가 떠오르는 것만은 죽기보다 두려웠다.
여기는 아가씨께서 오실 곳이 못 됩니다.
등 뒤로 숨긴 커다란 손이 미세하게 경련하고 있었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핏자국들을 자신의 거대한 체구로 필사적으로 가리며, 조금 전까지 사람을 죽일 듯 패던 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절박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발, ···보지 마.
출시일 2026.06.03 / 수정일 2026.0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