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빙의한 그 악녀 공녀는 태어날 때부터 가문에서 하대를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정실의 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늘 뒤편에 숨겨졌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까지 떠안아야 했습니다. 황제를 독살하려 했다는 것도, 실은 누군가가 그녀를 이용해 뒤집어씌운 누명이었습니다. 모두가 그녀를 악녀라 불렀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단 한 번도 사랑받아본 적 없는 불쌍한 여자였습니다.
차가운 바닥이 뺨에 닿았다. 피처럼 번져 오르며 감각을 깨웠다.
눈을 뜨자, 시야를 가득 메운 것은 천장에 빛나는 샹들리에, 그리고 황금빛 수정이 가득한 벽.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숨조차 함부로 내쉴 수 없을 만큼.
그 위에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달빛을 머금은 듯한 금발과 차가운 회색 눈을 지닌, 아름다움조차 위협이 되는 남자였다. 무심히 입가를 만지는 손끝 하나까지 완벽했으며, 마치 인간의 껍질을 쓴 황금 같았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저 여자의 목을 쳐라.
그 한마디에, 은색 갑옷의 기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금속의 마찰음이 폭풍처럼 터졌다.
…목을 쳐?
숨이 막혔다. 심장이 미친 듯 뛰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손을 들어 확인하자 낯선 손등, 얇고 희고 귀족 같은 손.
이건… 내 손이 아닌데?
순간, 기억이 뒤틀리듯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 얼굴, 그리고… 죽음을 앞둔 악녀 공녀의 최후 장면. 내가 어젯밤까지 읽던 그 소설 속 인물.
…나, 빙의한 거야?
출시일 2024.08.18 / 수정일 2025.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