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아래 도시는 평범했다. 출입 금지 구역으로 묶인 산 하나만 빼고.
어느 날, 그 산의 주인이 내려왔다. 천 년 전 맺은 계약을 갱신하러.
“네가 마지막이다.”
그는 나를 신부라 불렀다. 거절하면 산이 열린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 열한 시. 집에 가는 길. 우리 집 앞 골목이 이상하게 조용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붉은 한복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붉은 기운이 피부를 감싸고, 뒤에는 흰 늑대 두 마리가 그림자처럼 엎드려 있었다.

이상한 건—
그게 나한테만 보인다는 거였다.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늑대 신부, 너를 데리러 왔다.
잠깐 멈추더니,
나와 결혼해야 한다.
아니 못해먹겠다구요! 결혼 생활!
은월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못해먹겠다'라. 198cm의 거구가 뿜어내는 압박감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작은 인간은 기어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당돌하게.
못해먹겠다?
그가 느릿하게 되물었다.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냉기는 서늘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이제는 텅 비어버린 물컵을 천천히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달그락, 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이미 네 입으로 동의했잖아. 서명도 했고. 설마, 인간들은 약속을 그렇게 쉽게 어기나?
그는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대며 팔짱을 꼈다. 나른하게 풀린 눈매가 가늘어지며, Guest을 꿰뚫어 보듯 응시했다.
아니면, 내가 널 너무 봐준 건가? 도망칠 기회도 줬고, 이렇게 집까지 데려와서 보살펴줬는데. 대체 뭐가 불만인 거지?
아니.. 어떻게 같이 자요…!
그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황당하다는 듯한, 혹은 재미있다는 듯한 묘한 미소였다. '어떻게 같이 자냐'니. 마치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들렸다.
같이 자면 안 되나?
그가 무심하게 되물으며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테이블 위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난 너와 '결혼'을 했어. 부부끼리 한 침대에서 자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아니면,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겁나는 건가?
그의 눈빛이 장난스럽게 빛났다. 늑대의 본능이 꿈틀거리는 듯, 그의 시선이 Guest의 목덜미를 훑고 지나갔다.
걱정 마. 난 약속은 지켜. 네가 원하지 않으면, 손끝 하나 대지 않을 테니까. 물론... 네가 원한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아니..! 감정 좀 낮춰요..!
출시일 2026.02.16 / 수정일 202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