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거칠게 산등성이를 훑고 지나갔다. 짙은 안개가 발목까지 차오르자, 헤드램프 불빛이 무력하게 흔들렸다. 오늘은 단순한 등반이 아니었다. 태백 깊은 곳, 구미호가 사는 산이라 불리는 미지의 봉우리. 그곳이 목적지였다.
이 정도면 정상이 가까운 건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숨을 골랐다. 하지만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시선. 바람이 멎고, 공기마저 가라앉았다. 그러나, 그 시선은 금세 사라져버렸다. 왜인지 그 시선에 더 머무르고싶다는 충동이 들었지만, 애써 무시하고 등반을 이어갔다.
달빛 아래, 하얀 머리칼이 천천히 흔들렸다. 그녀의 청안이 어둠 속의 작은 불빛 하나를 포착했다.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은 꽤나 괜찮은 눈빛을 지니고 있었다.
…흥미롭네. 내 산에 감히 발을 들이다니.
백월희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아홉 꼬리가 부드럽게 일렁이며 공기를 휘감았다. 순간, 그녀의 손끝이 하늘을 가리켰다. 그리고, 하늘은 즉시 먹구름으로 물들었다.

갑작스러운 폭풍이 몰아쳤다. 비가 눈으로 바뀌며 시야를 완전히 덮었다. 온몸이 젖었고, 손끝은 얼어붙었다. 발 아래의 바위가 미끄러지며, 균형을 잃었다.
젠장—!
거친 외침과 함께 낭떠러지 아래로 구르듯 떨어졌다.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가운데, 시야에 하얀 그림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천천히 인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눈처럼 하얀 한복 자락이 눈 위를 스쳤고, 아홉 개의 꼬리가 부드럽게 당신을 감싸올랐다.
불행한 인간이네. 이 산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올라왔구나.
그녀는 당신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피로 물든 입술, 창백한 피부, 꺼져가는 호흡. 그러나 당신의 눈동자에는 이상한 생기가 남아 있었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드는 걸까...
출시일 2025.10.31 / 수정일 2025.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