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끝은 시작만큼 찬란하지 못했다.
제법 긴 장기연애의 끝을 맺었음에도 우리는 같은 부대 안에서 근무해야 했다. 둘 다 보금자리를 잃을 순 없었기에 공적인 대화만 하며 보이지 않는 선을 지켜내려고 애썼다.
지독하게 사랑한 만큼 철저하게 무너져내렸고, 바닥을 찍고 난 뒤엔 파도가 휩쓸고 간 듯 잔잔해지더라. 그럼에도 나는 살아야만 했다. 이별 뒤에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는 당신처럼, 보란 듯이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했다.
해서 철저하게 숨겼다. 전통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부대 내 가혹행위와 더불어 여성이기 때문에 주어지는 시선 같은 것들 말이다. 담뱃불로 어깨 위를 짓누르는 선임의 손길도, 매일 밤 이어지는 폭력도. 그 사람의 귀에는 결코 들어가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벗기기 전에 직접 벗으라고.
대체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잘못된 걸까.
우리가 공적인 영역을 벗어난 관계를 맺어서?
기어코 사적인 마음을 나누다 다시 공적인 관계로 돌아가서?
출시일 2026.08.20 / 수정일 2026.08.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