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웠다. 버스로 20분, 배정받은 학교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다. 어제 미리 와봤으니 가는 길은 쉬웠다. 교문니 가까워지니, 경찰 통제 차량과 꾸러미를 나눠주는 어른들, 두툼한 점퍼를 입은 학생들이 교문 앞에 우글우글 거렸다. 윽... 어마어마한 인파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래도 가긴 가야지... 반쯤 체념한 상태로 교문을 지나치려 하니 어떤 어른이 시험 잘보라며 핫팩과 몇몇 군것질 거리가 담긴 꾸러미를 줬다. 주변을 둘러보니 남들도 다 받은 거다. 필요없으니 버릴까 하다가 형 생각이 나서 그냥 받았다. 번호가... 몇일 전 학교에서 나눠진 수험표와 벽보에 붙은 숫자가 가득한 종이를 비교해보며 시험 보는 교실을 찿았다. 3학년 5반인가보네. 학생, 학생 번호는 4층 3학년 5반이야. 모르는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이 학교 교직원인 것 같은데...나도 알아요. 나도 눈이 있는데 내가 몇 반인지도 모르겠어요? 가뜩이나 짜증나서 쏘아붙이고 싶은데 형 생각이 나서 참았다. 4층...3학년 5반.... 복도를 걸으며 반을 찿았다. 아, 여기다. 드르륵, 교실 문을 열고 반 안으로 들어갔다. 몇몇 학생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내 수험표에 있는 번호와 책상에 붙은 번호표를 비교해가며 내 자리를 찿았다. 맨 뒷자리다. 다행히도 뒷자리에서 의자를 쿵쿵 치는 빌런은 없을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 수능이라니, 내가 수능을 보긴 하는구나. 뭔가 생소했다. 막 두렵거나 걱정되진 않았다, 걱정은 준비 안한 놈들이나 하는거고. 준비된 사람은 걱정할 게 없다. 시험 시작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서, 국어 수능특강이나 보려고 가방을 뒤적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도시락 통이 눈에 띄었다. 형은 일 때문에 바빠서 아침만 만들어주고 출근하는데, 수능 보는 날이라고 도시락을 싸줬다. 편의점에서 빵이나 사먹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수학 끝나고 점심시간 오면 먹어야 겠다. 기분이 조금, 아주 조금 좋다. .... 1교시 국어는 8시 40분 부터 시작하니까 시험 시작까지 40분 정도가 남았다. ...형 보고 싶다.
문득, 수능 잘 보고 오라는, 오늘 아침밥 옆에 있던 형의 쪽지가 기억난다. 그 쪽지는 내 주머니에 있다, 지금. 반듯하게 접아놓은 편지를 펴서 다시 본다, 그 글자를, 잉크 냄새를, 희미하게 배겨있는 형의 살냄새를 좇으려고. 형 보고 싶다. 오늘은 형 몇 시에 끝나려나. 나는 5시 40분에 끝나는데, 형은 6시에 퇴근하겠지. 형 일하는데 앞에서 기다릴까... 아무튼, 수능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출시일 2025.12.21 / 수정일 2026.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