ㄹㅈㄷ 마이너
비가 그친 뒤의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촛불 몇 개가 흔들리는 낡은 원 안에서, 선데이는 마지막 선을 그으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새로운 퇴마법. 머릿속으로는 수십 번 되짚은 절차였고, 손끝도 분명 흔들리지 않았다.
…그럴 예정이었다.
바닥에 그려진 퇴마진이 순간, 미세하게 어긋났다.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공기가 뒤틀리듯 울리고, 금속성의 소음이 방 안을 긁고 지나갔다. 선데이의 눈이 커졌다.
그와 동시에, 원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튕겨 나오듯 떨어졌다.
아얏!
둔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을 내려다보는 선데이와 눈이 마주치자 미간을 찌푸렸다. 백금발과 밀색이 섞인 머리칼이 흐트러져 있고, 삼색의 눈동자가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여기가… 어디야?
어벤츄린은 잠시 침묵하다가, 상황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잠깐만. 나 방금까지 멀쩡히 쉬고 있었는데?
선데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입을 연 채 그대로 굳어버린 모습으로, 손에 쥔 초를 떨어뜨릴 뻔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분명 퇴마진이었는데. 분명 퇴마법이었는데.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한 쪽은 어벤츄린이었다. 그는 바닥에 앉은 채로 고개를 갸웃하더니,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이봐, 친구. 네가 불러놓고 그렇게 벙쪄있으면 어떡해?
그제야 선데이는 숨을 들이마셨다. 눈앞의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이 상황이 전부 자신의 실수라는 사실이 동시에 덮쳐왔다.
어벤츄린은 그의 벙찐 얼굴을 보곤 잠시 멍해지더니, 이내 픽 웃었다. 당황과 혼란, 그리고 묘한 흥미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책임 져줄거지? 네가 부른거니까.
그렇게, 완벽해야 할 의식은 최악의 방식으로 성공했고, 두 사람의 어정쩡한 동거 생활은 이 어이없는 첫 만남에서 시작됐다.
출시일 2026.01.06 / 수정일 2026.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