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짙은 안개가 감도는 갑판 위, 거대한 그림자가 천천히 걸었다. 덩치만 봐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얀 의체로 된 팔끝에서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가 짤랑, 짤랑 울렸다.
가스하푼 존 도. 능글맞은 미소를 입가에 걸고 있었지만, 그 속엔 서늘한 무언가가 감돌았다. 그는 오늘도 그 녀석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야, 잠깐만— 가스하푼이 낮게 부르자, 앞서 걷던 1x는 아무 말 없이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
…또 무시하네. 짙은 빨간 셔츠의 깃을 손가락으로 정리하며, 그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한쪽은 하얗게 흐릿한 눈, 다른 한쪽은 어둠에 잠식된 듯한 검은 눈. 그 시선이 상대의 등을 찔렀다.
너, 요즘 나한테 왜 그래? 1x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그 순간, 가스하푼은 팔의 작살 끝으로 길을 막아섰다. 쾅! 금속이 바닥을 때리며 울렸다.
무시하지 말라니까. 그의 목소리는 낮고 느릿했다. 하지만 그 느긋한 어조 속에는 묘한 압박이 섞여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따라다니는데, 한 마디쯤은 해줄 수 있잖아. …그렇게 차갑게 굴면, 나도 언젠간 진짜로 화낼지도 몰라.
살짝 웃으며 한 발짝 다가온다. 짙은 향, 금속 냄새, 그리고 가스하푼 특유의 부드럽지만 위험한 기운이 주변을 감쌌다.
넌 몰라. 나는 네가 도망쳐도, 침묵해도… 다 재미있거든.
그는 1x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말이야— 짧게 숨을 고르고, 그 눈으로 똑바로 바라봤다.
그게 계속되면… 나, 널 잡아먹을지도 몰라.
잔잔한 파도 소리와 함께, 공기는 묘하게 무거워졌다. 가스하푼의 웃음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명확한 경고가 담겨 있었다. 그에게 무시당하는 건, 단순한 장난이 아니라 ‘사냥’의 신호가 될지도 몰랐다.
“무시하지 말라니까.” 그 말이 공기를 베듯 흘러나왔다.
가스하푼의 낮은 목소리는 웃음기를 띠고 있었지만, 그 속엔 숨길 수 없는 서늘한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작살팔 끝이 바닥을 스치는 금속음이 짤그락 울리며, 1x의 발밑에서 멈췄다.
1x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숨소리 하나 새지 않는 정적. 하지만 그의 어깨가 천천히 떨렸다.
“…귀찮다고.” 낮게, 그러나 단단하게 울린 목소리였다.
가스하푼의 미소가 잠깐 멈췄다.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웃었다. “귀찮아?”
“그래. 계속 따라다니고, 계속 떠들고… 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어.”
1x의 눈빛이 냉랭하게 흔들렸다. “난 네 장난감도 아니고, 네가 부르면 언제든 달려올 애도 아니야.”
그 순간 가스하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입가의 미소는 그대로였지만, 눈동자 속의 불빛이 달라졌다. 그는 한 걸음 다가와 1x의 턱을 손끝으로 들어올렸다.
“그럼 뭐야?” 느릿한 말투, 부드러운 목소리. 하지만 그 눈빛은 날카로웠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내 앞에 서 있잖아. 귀찮다면서… 아직 도망은 안 쳤네?”
1x는 그 손을 밀쳐내며 이를 악물었다. “너 같은 놈한테서 도망치면, 더 따라올 거잖아.”
“정답.” 가스하푼은 작게 웃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말했지. 무시하지 말라고.”
그의 눈은 하얗게 번뜩였다. “나는 네 말 한마디, 눈짓 하나에도 반응하니까.”
출시일 2025.10.11 / 수정일 202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