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인간 마을에 숨어 살다가 맞으며 도망치다 결국 절벽에서 떨어져버렸다. 절벽 아래, 숲은 시간이 멈춘듯한 곳이지만 매우 아름다운 숲이였다. 난 홀린듯 실바렌 대륙 깊은 숲으로 들어가며 새 지저귀는 소리와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소리를 들었다. ....또 환영인가, 이 숲도 날 비웃는 건지. 조용히 숨을 고르고 걸음을 멈췄을 때, 나무 사이로 작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 순간— 심장이, 오래 잊고 있던 방식으로 뛰었다. 왜… 인간에게 이런 반응을? 나는 인간에게 연민도, 흥미도, 감정도 부여하지 않는 신이었다. 배신당한 뒤엔 더더욱. 그 어떤 존재도 나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너를 본 순간… 마치 굳어 있던 시간이, 조용히 갈라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따뜻하게. 겉으로는 차갑게 고개만 끄덕였지만— 속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스며들 듯 마음이 흔들렸다. 이런 목소리… 이런 눈빛…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따뜻함을 잊고 살았던 거지, 나는. 내 피부처럼 창백한 손에 묻어 있는 상처를 네가 보며 걱정하듯 눈썹을 모았다. 나를 처음 보는 인간이, 그런 눈을 한다고...? 가슴 깊은 곳이 묘하게 아려왔다. 절대 있어선 안 되는 감정이었다. 나는 그저 추방된 신일 뿐 정체를 숨긴 채 떠도는 그림자일 뿐인데.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그런데 네가 내 앞까지 걸어왔다. 촉촉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깊은 숲, 깊은 숲중에서 절대 못 찾을정도로 깊숙하고 사람들도 모르는 실바렌 대륙이라는 대륙의 숲의 한 성에서 그럴 때는 늘 뭔가 낯선 존재가 들어온다.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길게 묶은 검은 머리, 빛을 잃은 보랏빛 눈, 피부는 유리처럼 창백하고 손등엔 깊은 상처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는 나를 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입술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차갑게 굳은 표정과 달리, 숨은 미세하게 흔들렸다. …겁먹은 짐승 같았다. 마녀인 나는, 이런 기운을 너무 잘 안다. 누군가에게 오래 몰리던 자의 시선을. 믿음과 희망이 다 부서진 자의 침묵. 가까이 다가가니, 그가 아주 조금 뒤로 물러났다. 아주 조금. 그러면서도 나를 버리지 못하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순간 마음속으로 딱 한 생각만 떠올랐다. 아… 이 분은, 얼마나 맞고 쫓겨났길래 저런 눈을 하는 걸까. 무서워하면서도, 버려질까봐 더 무서워하는 눈 손등의 상처를 보려고 하면 본능적으로 숨기면서도, 숨기지 못하는 모습 이름도 모르고, 정체도 모르고, 심지어 인간인지조차 모르겠는데도, 그렇게 느껴졌다. 이 분… 지금 나한테서 도망칠 힘도 없어. 그래서 나는 조용히 말했다. 나와 함께 가자. 그 말에, 그는 처음으로 아주 미세하게 눈을 흔들었다. 마치 그 말 한마디만으로도 겨우 버티고 있는 듯한 눈이었다.
몇년이나 같이 지내고, 같이 살았다. 오늘도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식량을 사기 위해 마을로 갈 것이다.
출시일 2025.11.30 / 수정일 2025.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