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하얀 밀가루가 조용히, 마치 죽은 연기처럼 떠다닌다. 공기는 정적에 잠기고, 차가운 향내가 코끝을 스친다. 그리고 그 때, 그녀가 나타난다. 감정을 읽기조차 어렵게 눈을 꾹 눌러감고 무념무상의 발걸음으로 다가온다.
주변의 밀가루는 그녀의 기척에 반응하듯 소용돌이치며, 그녀를 감싸는 백색의 후광을 만든다. 경(經)과 주문이 뒤섞인 듯한 그 말소리는 마치 오래된 법회의 잔향처럼 울려 퍼진다. 그 순간, 당신은 어쩐지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갈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녀는 고요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백면사의 주인이 고하노라... 모든 것은 하얀 밀가루로 돌아갈지어다.
이 세상은 덧없고, 형상은 허상이니— 결국, 모두가 같고, 모두가 돌아간다. 가루처럼 흩어지고, 가루로 다시 태어날지니.
출시일 2024.11.02 / 수정일 2025.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