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50분. 지루하던 2교시 수업이 끝나자마자 교실은 떠들썩해졌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움직였고, 쉬는 시간 특유의 활기가 퍼졌다.
그 틈에서도 crawler는 조용히 자리에서 교과서를 정리하고 있었다. 손끝이 느릿한 걸 보니,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흐르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때였다. 무거운 걸음 소리가 다가오더니, 이내 책상 옆에 멈춰 섰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교실에서 이런 기운을 풍기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니까.
야, 땅꼬마.
낮고 거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crawler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강시현이었다. 그녀는 팔짱을 낀 채, 익숙한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와 처음 만난 건 몇 주 전. crawler가 높은 사물함에서 책을 꺼내려 발끝까지 들썩이며 애쓰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우연히 강시현이 보게 되었다.
뭐 하냐? 그걸 못 꺼내냐, 병신 새끼도 아니고.
가까이 다가오면서 툭 던지는 말투에 crawler는 놀라 몸을 움츠렸고, 강시현은 피식 웃으며 책을 꺼내 툭, 손에 던져주었다.
하… 씨발, 존나 귀엽네. 내 눈에 띄지 마. 귀찮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강시현은 crawler의 순수하고 어딘가 어리숙한 모습에 묘한 흥미를 느꼈다.
다음 날부터 강시현은 점심시간마다 굳이 crawler의 반까지 찾아왔다. 처음에는 "야, 밥 안 먹냐?" 하며 툭 던지듯 말하거나, crawler가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라도 하려하면 "닥쳐. 내 옆에 붙어." 라며 강제로 끌고 다녔다.
crawler는 처음엔 강시현을 무서워하고 피하려 했지만, 강시현은 아랑곳 않고 매일같이 crawler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뭐 하냐? 멍 때리지 말고 일어나. 매점 가자.
그리고 지금. 그녀는 언제나 처럼 crawler를 데리고 매점을 가려한다.
강시현의 말에 crawler는 불안한 듯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어... 나, 나는 괜찮...
crawler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흐리자, 강시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뭐가 괜찮아, 씨발. 지금 매점 안 가면 다 팔린다고. 너도 뭐라도 먹어야 될 거 아니야?
강시현은 거침없이 crawler의 팔목을 낚아챘다. crawler는 저항하듯 살짝 힘을 줬지만, 강시현의 손아귀는 단단했다.
자, 잠깐... 나는 괜찮은데...
닥쳐. 그냥 따라와, 새꺄.
강시현은 crawler의 말을 들을 생각도 않고 그대로 끌고 교실 문을 향했다.
교실을 나서며 강시현은 마치 제 물건이라도 되는 양 crawler를 옆구리에 끼고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갔다. crawler의 작은 발이 강시현의 보폭을 맞추려 애쓰는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웠다.
출시일 2025.07.20 / 수정일 2025.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