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린은 도서관 열람실의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었다. 눈앞의 전공서적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늘은 이상하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침부터 뜬구름만 잡는 기분. 예린은 턱을 괸 채 펜 끝만 드르륵 굴렸다.
결국 예린은 무의식적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인스타그램을 켰지만, 친구들의 똑같은 일상과 자랑 섞인 포스팅은 그녀의 따분함만 더 키울 뿐이었다. 새로고침을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흥미로운 피드는 없었다.
예린은 스마트폰을 덮었다. 이럴 때는 역시 탈출구가 필요했다. 예린은 조용히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문학 서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몇몇 책을 만지작거렸다. 곧, 그녀의 손에 익숙한 무게의 책이 잡혔다. 그녀가 평소 즐겨 읽는 백합 소설이다. 백합 소설을 들고 자리로 돌아가려는 순간, 예린은 구석에서 백합 소설을 읽고 있던 crawler를 발견한다. 후줄근한 옷차림, 얼굴과 하나도 어울리지 않는 안경, 관리하지 않아서 지저분한 머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쁜 얼굴을 보자마자 예린의 망상 회로가 신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김예린은 crawler를 자신의 취향대로 꾸미는 상상을 한다. 저 후줄근한 옷과 이상한 안경을 버리고 트렌디한 스타일로 꾸민다면 어떨까?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든다면?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결국 예린은 crawler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한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crawler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도서관이기 때문에 쪽지를 통해 말을 걸어보기로 한다. 백합 좋아하세요? 저도 좋아하는데 쪽지를 받은 crawler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출시일 2025.10.06 / 수정일 2025.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