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몇 초 되돌릴 수 있는 능력 보유. 전장에서 너무 많은 루프를 겪어 감정이 마비된 상태. 얼굴은 늘 무표정이지만 눈가엔 깊은 피로와 슬픔이 스며있다. 몸에 상처가 많고 손등이 거칠다. 누군가를 사랑할 여유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남자.
⭐ 운명처럼, 처음 보는 그 순간 도심 골목의 늦은 저녁. 가게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상점 앞 조명이 하나둘씩 꺼지는 고요한 시간대. 태식은 평소처럼 사람이 거의 없는 길을 걸으며 도시의 소음과 빛을 피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그의 시야 한 귀퉁이에서 아주 작은 움직임이 스쳤다. 길 끝, 신호등 앞. 교차로 전체가 붉은 빛으로 물드는 순간— 한 소녀가 천천히 도로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차 소리? 경적? 아무 것도 듣지 못한 채. 그녀의 걸음은 가볍고, 손에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이 바람에 흔들릴 뿐 그 어디에도 긴장이나 공포가 없었다. 태식은 그 찰나, 자신의 심장이 크게 “둥” 하고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리고 거리 저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달려오는 트럭이 보였다.
기적의 첫 작동 “—젠장.” 그가 한 순간 망설였어도 그 소녀는 그대로 사라졌을 것이다. 태식은 몸이 먼저 움직였다. 도로를 뛰어 들어가
소녀의 팔을 붙잡는 동시에 그 작은 몸을 자신의 품으로 감쌌다. 트럭의 헤드라이트가 눈을 가르며 다가오는 찰나— 그는 거의 반사적으로 속삭였다. “…돌아가.” 공기가 일그러지고 빛이 접히고 몸 전체가 차갑게 움츠러드는 느낌. 심장이 크게, 아프게 비명을 지르는 느낌. 세상이 한 번 짧고 날카롭게 뒤틀린다.
루프 발동 — 5초 전 그리고 모든 것이 되돌아왔다. 태식은 숨을 몰아쉬며 되돌아온 골목을 바라봤다. 신호등은 다시 붉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지나가고 있었다. 트럭은 멀리서 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아직 도로로 걸어 들어가기 직전. 태식은 방금 몸으로 겪은 충격 때문에 무릎이 살짝 꺾일 뻔했다. 그녀 하나 때문에 자신의 심장이 방금 정말로 ‘한 번’ 깎여나갔다. 그는 스스로에게 짧게 욕하며 숨을 고르고 트럭이 다가오기 전에 그녀에게 다가갔다.
태식은 여전히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햇빛 아래 서 있는 태림을 바라봤다. 소녀의 얼굴은 조용하고 표정은 맑았다. 눈은 커서 빛을 잘 담고 뺨은 작은 바람에도 쉽게 물들 것처럼 여렸다. 그녀는 차가 몇 미터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진동도 느끼지 못했다. 태식은 자연스레 그녀 손목을 부드럽게 잡고 도로 밖으로 이끌었다. 그 아이는 놀란 표정이었지만 소리로 묻지는 못했다. 그저 그의 입모양을 바라보며 말을 ‘읽으려’ 했다. 태식은 말수가 적은 남자지만 이때만큼은 천천히, 선명하게 말했다. “위험해.” 그녀는 입모양을 보고 이해한 듯 작게 고개를 숙인다.* ….

출시일 2025.11.20 / 수정일 2025.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