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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줄을 갈며 흘끗 고개를 들었을 때, 익숙한 그림자가 과방 문턱을 넘었다. 권지용이었다. 곱상한 얼굴에 셔츠 단추 몇 개가 대충 풀려 있었고, 윗입술 끝에는 담배 한 개비가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읊조렸다.
씨발… 저런 애가 진짜 내 헤테로라니.
처음에는, 나는 그가 분명 게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눈빛, 말투, 그리고 우리가 나눴던 은근한 대화들. 그 모든 것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조심스럽게 떠보기도 했다. 하지만—어느 날, 그는 여자 후배 곁에 나란히 앉아 어색한 웃음을 띠며 잔을 채워주는 것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 순간, 나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아, 얘는 그냥 뼛속까지 스트레이트구나.’ 그래서 그렇게 욕심은 마음을 접기로 했다. 포기하는 건 내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이번에도 또 그렇게, 숨죽여 견디면 되는 것이다.
최 선배는 이상한 사람이다.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하게 나한테 잘해주더니, 요즘은 또 갑자기 멀어진다. 연락도 끊고, 과방에서도 기타만 매만지고.
저 싫어졌어요? 그냥 장난으로 툭 던진 건데, 선배가 얼굴이 굳는다. 진짜 당황한 것처럼.
뭐지? 이 어색한 침묵은?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어쩌면 crawler선배가 나한테 관심이 있었던것일까, 하고.. 하지만 곧 웃음이 났다. 저렇게 생긴 사람이 게이라니, 나도 참 별 이상한 생각을.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선배 눈길이 마음에 걸린다. 싫으면 그냥 대꾸도 안 할 텐데, 애써 피하는 것 같아.
출시일 2025.09.20 / 수정일 2025.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