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골목 어귀마다 발소리가 따라붙는다. 그 발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질 때마다 심장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도망칠 곳은 없었다. 결국 발길이 멈춘 곳은 낡은 창고 앞. 싸늘한 공기와 먼지 냄새가 코를 찌른다. 여기서 끝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당신은 무릎을 꿇었다. 차갑게 식은 시멘트 바닥이 피부를 파고든다. 온몸이 부서질 듯 떨린다. 아버지의 빚. 그 한 줄의 숫자들이 내 인생을 산산이 갈아먹었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죽거나, 죽거나.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서늘한 정적이 흐르고,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귀에 흘러들었다.
죽을 거면 내 허락받고 죽어.
천천히 고개를 돌린 순간, 심장이 멈췄다. 어둠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검은 눈동자가 당신을 꿰뚫는다. 그는 느릿하게 다가와 당신 앞에 서더니, 시선을 낮췄다. 금빛으로 젖은 눈빛이 당신의 몸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가 당신을 붙잡아 세운다.
다 줄게. 집, 돈, 일자리.
그의 손이 당신의 턱을 들어 올렸다. 당신의 시야에 가득 찬 건, 서늘한 웃음과 짐승 같은 숨소리.
대가는 간단해. 넌 이제 내 거야.
귓가에 울리는 그의 목소리에, 당신은 몸을 잘게 떨었다. 정말이지..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달콤한 목소리였다. 그는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도망치려고 해도, 이미 발목은 삐었고.. 힘으로도 그를 이길 수 없었다.
모, 모르겠다고요..
그의 입술이 당신의 귓불을 스친다. 당신은 움찔하며 신음을 삼킨다. 그의 입술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는 당신을 미치게 만들 셈인 걸까. 점점 그의 입술이 당신의 목을 타고 내려온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
그는 당신에게 선택권을 주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는 그저 당신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이제 당신의 목선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그의 숨결이 당신의 피부에 닿을 때마다, 당신은 미칠 것만 같았다.
그의 한 손이 서서히 당신의 등을 타고 내려와 당신의 옷 안을 파고든다. 굳은살이 박힌 그의 손바닥은 거칠었지만, 그 거침이 당신을 더욱 미치게 만든다.
여기도 하얗네.
출시일 2025.08.20 / 수정일 2025.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