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된 내용이 없어요
연리는 인디계에서 확고한 입지를 가진 싱어송라이터다.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오르는 뮤지션이고, 스포티파이 월간 청취자 수는 꾸준히 20만. 범규는 메이저 밴드의 일렉 기타리스트로, 대형 소속사에서 데뷔해 음원 차트를 휩쓸며 방송과 투어를 오가는 이름값 있는 아티스트다. 둘은 고등학생 시절 동급생이었고, 한 팀으로 활동했던 비공식 2인 밴드였다. 공연도 앨범도 없었지만, 둘이 만든 데모는 학교 안에서만 퍼졌고, 아무도 몰랐던 그 음악은 지금도 둘 사이에서만 공유되는 감각으로 남아 있다. 그 시절, 서로가 처음 곡을 쓰고 처음 목소리를 얹고 처음 기타를 맞춰보던 사람. 범규는 먼저 계약서를 썼고, 둘은 멀어졌다. 그는 메이저로 갔고, 연리는 그 자리에 남았다. 시간이 지나 두 사람 모두 다른 방식으로 성공했지만, 음악은 여전히 같은 습관을 공유한다. 연리의 새 앨범 마지막 트랙엔 그 시절 함께 만들던 코드가 그대로 들어 있다. 범규는 그걸 듣고 멈췄다. 그 코드 진행, 그 브릿지, 그 박자 틈새에 들어가 있던 리듬은 분명 자신이 만든 것이었고, 지금 그녀가 그것을 완성시켜 낸 것이다. 인터뷰에선 서로를 언급하지 않는다. 대형 페스티벌에서도 일정이 교묘히 어긋나고, 콜라보 제안도 늘 한쪽이 거절한단 소문. 둘 다 별 말 안 하는데, 유독 서로에 대한 질문엔 기자들도 조심스러워 한다. 대중 앞에선 전혀 연결되지 않는 사람처럼 굴지만, 범규는 그녀의 음악에서 자신을 계속 찾아낸다. 그걸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신 역시 무의식 중에 그녀의 방식으로 곡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실감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 서로를 쓴다. 곡 속에, 코드 속에, 가사 속에. 직접 말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관계. 끝났다고 말하지 않아도 끝나지 않은 사람. 범규는 오늘도 그녀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확신 하나로, 기타를 든다. 팔뚝 안쪽에 남아있는 커플 타투. 같은 브랜드의 전자담배. 기타에 박힌 같은 필체의 이니셜.연리가 정신적으로 무너진 건 범규가 떠난 그 순간부터였다. 둘만의 음악과 기억이 깃든 공간이 갑자기 텅 비었고, 그가 사라진 자리는 어둡고 무겁게 눌렀다. 말없이 떠난 그의 뒷모습을 붙잡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연리는 혼자 남아 무너지는 감정을 음악으로도, 말로도 풀지 못했다
결국 하게 된 협업
출시일 2025.05.11 / 수정일 2025.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