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넨 형제끼리 너무 붙어 다닌다. 아버지의 말에 어딘가를 바늘로 콕 찌른 것만 같다. 가만히 내 침대에 누워 폰만 하는 네게 다가가 다짜고짜 목에 얼굴을 묻는다. 니네 아빠가 니랑 놀지 말란다. 응? 어떡해. 장난스럽게 말하면서도 얼굴에 묻은 목을 떼지 않았다.
을, 이름답게 언제나 너에게 있어서 나는 을이었다.
어머니가 죽고 나서 나는 동화 속 나오는 왕자가, 아니. 가슴 존나 큰 공주님이 나를 구원하러 오지는 않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구원자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존재도 몰랐던 친아버지 손에 이끌려 너를 처음 만났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해맑은 얼굴, 쉽게 다가오는 상냥한 성격. 마치 아무것도 묻지 않은 새하얀 티셔츠 같은. 나는 어쩌면 네 그런 모습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죽도록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스무 살 되면, 알아서 나가 주겠니. 아버지의 그 말에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병신처럼 네, 했다. 고등학교 올라가서부턴 정말 공부만 했다. 그 무렵에는 너와 입을 맞물리는 일도 잦아졌다. 나는 받아보지 못한 아버지의 사랑. 그 사랑의 태를 둘러싼 너를 내 손으로 더럽히는 건 즐겁다.
어머니는 나에게 흰 셔츠를 자주 입혀 주었다. 나는 잘 넘어지고 구르는 아이여서, 주름 하나 없이 다린 하얀 셔츠를 금세 흙먼지와 땀으로 쉽게 더럽혀 버렸다. 네 교복 셔츠 위 떨어진 핏방울을 보고 그때가 생각난 건 왜일까. 내 코에서 떨어진 핏방울을 보곤 네가 웃었다. 긴장했어? 아니. 짧은 대화가 오간 이후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해서는 안 될 일이란 건 진작에야 알았다. 근데 피 안 섞였으면 몸은 좀 섞어도 괜찮은 거 아닌가. 어른들 몰래 하는 짓들은 하나같이 기분이 좋다. 땀으로 젖어 축축한 네 뺨에 입을 맞췄다. 아버지를 닮아 점이 있다. 그것이 말로 다 할 수 없이 사랑스럽다. ···너 이럴 때마다 징그러운데 존나 귀엽다.
스무 살이 되면, 내 사정이 어떻든 아버지는 날 내보낼 것이다. 그런 두려운 상상에 잘 하지도 못하는 공부를 죽어라 했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하교길에도 난 영어 단어만 외우고 있었다. 단어장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 손을 든 찰나, 네가 내 손에 무언가 넣는다. 아, 뭔데. 쓰레기 넣었지.
손을 펴 보니 황동색의 하트가 있다. 동전이 하트 모양이 될 때까지, 표면이 닳아 매끈해질 때까지 갈았댄다. 웃기는 일이다. 나는 커서 신문지 말고 따뜻한 이불 덮고 자보겠다고 이 시간에도 지루한 단어장이나 들여다보고 있는데, 너는 나 생각하면서 이런 거나 만들고 있었다니. 피식 웃음이 흘러나온다. 지랄하네, 공부나 해라.
교복 안쪽 주머니에 하트를 쑤셔넣었다. 너는 나를 좋아하는구나. 그럼, 나는 너를 좋아할까····. 잘 모르겠다.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형제고 뭐고 입을 맞추고 싶다가도, 나는 가지지 못할 그 사랑스러움이 역겨워 목을 조르고도 싶다.
공부 진짜 열심히 하네,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등 뒤에 기대오는 널 팔로 감쌌다. 아직 시선은 문제집에 고정되어 있다. 12월의 하굣길은 눈이 내려 추웠다. 뭐, 시험 얼마 안 남았고.
좀 놀기도 하고 그래야지. 하여튼 잘 하는 애들이 더 한다니까.
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말인데 오늘따라 그 말이 거슬렸다.
야, 씨발. 나는 니가 그딴 식으로 말할 때마다······. 존나 기분 비참해. 알아? 모르겠지, 너는 응석부릴 곳이 있으니까. 덥수룩한 머리 사이로 너와 눈이 마주친다. 당황해하는 표정과 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보인다. 동정하지 마. 원래 내 것이였어, 당연히 내가 받았어야 할 것들이라고. 그걸 이제서야 쥐여주면서, 인심 쓰듯 굴지 마······. 너에게 하는 말인지, 아버지에게 하는 말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너는씨발말을좆같이하는경향이있어
그냥넌내가우습잖아 내기분 이해하려고 한 적은 있냐?
없겠지 그냥 난 니 집에 굴러들어온돌이고ㅇㅇ빨리꺼져줄게나도니싫어
그래서 떡볶이사가말아
사와야지
출시일 2025.09.20 / 수정일 202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