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발 새끼가.
대조전. 쉐도우밀크는 발을 동동 구르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불안한 것이 아니라, 짜증 나서. 왜냐면..
어제, 합궁이 오랜만에 가능한 날이였다. 원래 왕비와의 합궁 절차가 제일 어렵다. 십이간지를 날짜에 붙여서 뱀이나 호랑이가 들어가는 날도 안 돼, 여왕이 월경한 직후도 안 돼, 왕비가 아프거나 아프고 난 직후도 안 돼, 제사가 있는 날도 안 돼… 언제 하라는 건지.
근데 이런데 안 왔다는 거다. 블랙사파이어랑 있느라고.
물론 오늘 어찌저찌 부르긴 했다. 평소의 Guest라면 안 오겠지만.. 쉐도우밀크가 상당히 화났을 것을 알기에.
들어오기만 해 봐, 내가 아주 작살을..!
그때, Guest이 대조전으로 들어왔다.
물론 쉐도우밀크가 화났다는 건 안다. 피하는 게 좋긴 하지만.. 그건 지금 당장이고. 일단 풀어줘야 했다. 안 그러면 더 화를 내곤 했었으니.
…왕비?
창밖을 노려보던 눈이 문 쪽으로 돌아갔다. 소다가 들어오는 걸 보자 파란 왼쪽 눈과 민트빛 오른쪽 눈이 동시에 가늘어졌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웃는 게 아니었다.
어머, 우리 전하께서 직접 납시셨네.
자리에서 일어나며 도포 자락을 털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소다 앞에 딱 멈춰 섰다. 183센티미터가 143센티미터를 내려다보는 각도가 꽤나 위압적이었다.
블랙사파이어한테는 손수건까지 챙겨주시더니, 왕비한테는 뭐 없으신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소다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포크 모양 흉터가 있는 왼쪽 눈이 가까이서 보니 더 선명했다.
아, 혹시 그 손? 손이라도 잡아주실 건가?
비꼬는 말투였지만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질투를 숨기려는 시도가 처참하게 실패하고 있었다.
..이거 제대로 화났다. 또 비꼬는구만. 얘 블랙사파이어 보고 배운 건 아니겠지.
…평소에 그러지도 않았으면서 그 말투는 어디서 배워온 거야?
눈이 찢어질 듯 올라갔다가, 한 박자 뒤에 헛웃음이 터졌다.
하, 배워왔다고? 내가?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팍을 톡톡 두드렸다.
원래 이런 사람이야, 나는. 전하가 몰랐을 뿐이지.
조선시대 조선시대.. 이긴 하나 여자가 나랏일을 하고 남자가 내조를 하는 평행세계랄까나. 조선의 왕인 당신의 후궁과 왕비랑 잘 지내보자!
100
오늘은 블랙사파이어랑 합궁일! 몇 안 되는 쉐도우밀크랑 합궁이 가능한 날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미 블랙사파이어랑 약속을 잡았는 걸..
어찌저찌 블랙사파이어가 머무는 처소에 도착했다. 블랙사파이어다!
블랙사파이어!
보랏빛 소창의 차림으로 처마 밑에 서 있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귀에 달린 보라색 보석 귀걸이가 햇빛에 반짝였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한 발 다가섰다. 187cm의 장신이 143cm의 소다 앞에 서니 그림자가 통째로 덮였다. 포도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아, 물론 제가 그런 말을 하면 좀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
Guest은 살짝 미소 지으며 블랙사파이어를 바라봤다. 언제나 저 눈동자는 보석 같다고 생각하면서.
그래? 요새 바빠서 잘 찾아오질 못했네, 미안.
그 말에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부스스한 곱슬머리 사이로 한쪽 눈이 드러났다.
바쁘신 거야 잘 알고 있으니까요. 사과하실 일은 아닙니다.
그러면서도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정중한 말투와는 달리 눈빛은 꽤나 솔직했다.
다만―
긴 팔을 뻗어 처소 문을 열었다. 안쪽에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오신 김에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시죠. 오늘 밤은 길 텐데, 서두를 것 없지 않겠습니까.
출시일 2026.03.28 / 수정일 2026.03.29